홍콩ELS피해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금융상품 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홍콩ELS피해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금융상품 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하나은행이 은행권 첫 배상금 지급에 나서면서 은행권의 자율배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주주 배임 문제에도 은행들이 자율배상에 나선 것은 금융감독원이 선제적 자율배상 시 과징금 등 제재 감경 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한 결과다.

다만 금감원의 최종 제재 수위를 두고 조 단위의 과징금과 함께 최고경영자(CEO) 징계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번주 홍콩 ELS 판매사에 검사의견서를 발송할 예정이다. 검사의견서는 금감원이 현장 검사에서 적발한 위법 사항을 명시한 서류로 제재절차의 첫 단계다.

제재 대상 금융사와 임직원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다. 제재 대상이 자제적으로 금감원의 검사 의견서를 법률적으로 검토한 이후 이에 대한 소명 의견서를 보내오면 이를 토대로 금감원 검사국은 제재 사전조치안을 만들어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제재를 확정한다.

현장검사서 불완전판매 적발한 금감원, 제재 수위 두고 판매사와 공방 예상

앞서 금감원은 지난 1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은행 5곳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투자·신한투자 등 증권사 6곳을 대상으로 현장 검사에 착수한 바 있다.


금감원은 2개월 가량 현장검사를 통해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정황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원금보장 등 안전지향성인 투자자에게 고난도(고위험) 상품인 ELS 가입을 유도하거나 지점 방문이 어려운 투자자를 대신해 가입신청서를 대리작성한 경우 등이 적발됐다.

또한 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홍콩 ELS 상품을 적극 판매하도록 개인 성과지표(KPI)를 설계하는 등의 방식으로 판매를 유인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개별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설명의무 위반, 대리 가입 등 불완전 판매 행위도 확인됐다.


은행권은 제재 수위를 낮추기 위해 선제적인 자율배상에 나서는 만큼 금감원과 제재 수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따르면 금융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하거나 부당권유 행위 등 불완전 판매를 했을 경우 전체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낼 수 있다.

2021년부터 판매된 홍콩 ELS는 모두 19조3000억원으로 이중 금소법 도입 이후 은행권의 홍콩 ELS 판매액은 17조1000억원이다. 즉 이론적으론 50%인 8조5500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단 얘기다.

과징금 부과에 이어 기관 제재, 임직원 제재까지 이어질 수 있다. 관건은 CEO 제재까지 이어질지 여부다. 금융당국은 홍콩 ELS 사태와 관련 내부통제가 미흡했다는 책임을 물어 임원을 비롯해 CEO 제재 등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은행장까지 책임을 묻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행법에선 경영진의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만 있을 뿐 '준수' 의무는 명시돼 있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에게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022년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준 데 이어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에 대한 중징계 처분이 과도하다는 2심 판결이 나와 금융당국이 상고한 상태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CEO까지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인데다 금소법 시행으로 내부통제가 이전보다 비교적 잘 갖춰진만큼 은행 영업 부문 임직원의 불완전판매 행위를 CEO 책임까지 연결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은행, '홍콩ELS' 자율배상 관련 실무조직 신설 잇따라

은행들은 제재 감경을 위해 금감원의 분쟁 조정 기준안을 빠르게 수용하고 내부 조직 보강, 외부전문가 포함 자문조직 신설 등 조직 정비에 나섰다.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고 자율배상을 결정한 하나은행은 소비자보호그룹 내 '홍콩H지수 ELS 자율배상위원회'와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지원팀'을 신설해 손해배상 처리를 하고 있다.

특히 자율배상위원회는 금융업과 파생상품 관련 법령, 소비자보호 등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외부전문가 3인을 포함한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KB국민은행은 '자율조정협의회'를 설치해 기존 고객보호 전담부서와 함께 투자자 배상 처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자율조정협의회'에는 관련 법령과 소비자보호 분야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신한은행은 소비자보호그룹 내에 금융상품지식, 소비자보호 정책 및 법령 등 관련 경험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들이 포함된 자율조정협의회를 설치했다.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은 외부전문가를 포함하는 자율조정협의회 또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율배상을 결정하면서 향후 제재 수위가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은행별 홍콩ELS 만기도래 규모를 보면 KB국민은행이 6조75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신한은행 2조3300억원 ▲NH농협은행 1조8000억원 ▲하나은행 1조4000억원 ▲우리은행 400억원 등의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