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줄일 방안으로 차등의결권이 거론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정부가 기술 성장기업이 주로 포진한 코스닥 시장을 1·2부로 나누고 승강제를 도입키로 하면서 혁신기업의 지배구조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자본시장 개혁과 혁신이 속도를 내려면 차등의결권 등 최소한의 경영권 안정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기업의 사유화 방지책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 하반기까지 한국거래소 상장 및 공시규정 개정을 거친 뒤 코스닥 시장을 프리미엄·스탠다드(가칭) 등 1·2부로 나눠 운영할 계획이다. 프리미엄에는 시가총액 상위 대형 성숙기업이, 스탠다드에는 성장 중인 스케일업 기업이 포함될 전망이다. 현재는 코스닥 시장에 성숙기업과 초기 성장기업이 섞여 있어 우량 기술주 시장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이 약화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번 개혁은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해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전략으로 관측된다. 해당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코스닥 시장 개혁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불필요한 경영권 갈등을 피해야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며 성과를 창출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어서다.


특히 창업주나 기업 소유주의 회사 지배력이 약해지기 쉬운 코스닥 스탠다드 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코스닥 스탠다드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초기 혁신기업은 외부 자금 유치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사업 투자를 진행해야 해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경우가 많다. 초기 혁신기업의 지배주주 지분율을 살펴보면 낮으면 한 자릿수, 높아도 20~30%에 그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커지면 창업주는 사업 본연의 가치 창출보다 지분 방어에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쏟게 된다"며 "이는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도 혁신 동력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자본 논리와 혁신 논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경영권 안정장치 확보 등 전향적인 제도 개편이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차등의결권 도입 의견…"대상 요건 제한으로 부작용 최소화"

사진은 국내 주요 기업으 몰려 있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 /사진=뉴시스


코스닥 스탠다드 기업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줄일 방법으로는 차등의결권이 거론된다. 차등의결권은 특정 주식에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업 소유주의 낮은 지분율을 보완할 수 있어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장치로 꼽히지만 반대로 소액주주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소수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사유화 문제가 대표적이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벤처기업이나 새롭게 출범하는 기업은 외부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지분이 희석되기 쉽다"며 "외국과 달리 한국은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으로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비상장 벤처기업에만 차등의결권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차등의결권 대상을 일부 코스닥 상장사로 넓혀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줄이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깐깐한 요건 제한을 두자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사업 초기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돕는 차등의결권이 제한적으로 있어야 한다"며 "일정 규모 이상 R&D(연구·개발) 투자를 진행하는 기술 특화 산업 등에 적용되거나 상장 초기 한시적으로만 운영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액주주들은 차등의결권을 반대하는 분위기다. 지금껏 기업들이 자사주를 주로 경영권 방어 용도로 활용했던 전례를 살펴보면 차등의결권 역시 지배주주를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서다.

소액주주연대 플랫폼 액트를 이끄는 이상목 대표는 "경영진이 경영권을 지키고자 한다면 주주들을 설득하면 되는 일"이라며 "부작용 우려가 있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건 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들은 단순하게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며 "경영권을 지키는 게 주가에 도움이 된다면 소액주주들은 차등의결권이 없어도 당연히 기존 경영진 편에 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등 해외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고 해서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국 증권시장은 1956년 시작돼 이제 막 70주년이 된 만큼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제도를 도입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미국과 영국은 각각 18세기, 17세기 증권시장이 태동해 200~300년 가량의 역사를 갖고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 대표는 "차등의결권이 보편화되면 지배주주의 권리는 확대되고 소액주주의 권리는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했기 때문에 한국도 해당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건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자본시장은 해외와 비교했을 때 역사가 짧고 시장 논리 외 다른 요인으로 휘둘릴 수 있는 등 체급이 낮다"며 "차등의결권 필요성은 일부 인정하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