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료인 나프타 수급 불안으로 현수막 제조가 어려워지자 현수막 없는 선거를 치뤄야할 정치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서울 서대문구 이대역 인근 도로변에 서울시장과 마포구청장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6·3 지방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현수막 없는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제기돼 주목된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현수막 원재료인 나프타 수급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여파가 산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회사들은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을 낮추거나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23일부터 전남 여수 국가산단 내 2공장 가동을 멈췄다. 여천NCC도 고객사들에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생산량을 조정하고 일부 공정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은 생산시설 가동을 멈추는 대정비작업(TA)을 앞당겼다.

석유화학 회사들이 NCC 가동 조정에 나선 것은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며 나프타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수입 나프타의 54%가량이 해당 해협을 통과하는데 봉쇄로 인해 선박들이 움직이지 못하며 나프타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나프타는 특성상 저장이 쉽지 않아 국내 남은 물량도 약 2주분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4월부턴 원료가 부족해 공장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나프타 수급 차질 영향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선거운동에 사용되는 현수막 원단과 외부 코팅 소재 모두 나프타를 원재료로 하는 만큼 수급 불안이 길어질 경우 지방선거에서 현수막을 걸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수막은 비, 바람 등에 버틸 만큼 내구성이 강해야 해 나프타를 원재료로 하는 폴리에스터 섬유로 만들어진다. 방수 기능 등을 강화하기 위해 폴리염화비닐(PVC)로 현수막을 코팅하는데 해당 소재도 나프타를 원료로 한다.

현수막 단가 상승도 정치권의 고심을 깊어지게 한다. 현수막은 유권자 생활 동선에 반복 노출돼 후보 인지도를 올리는 안정적인 선거 수단인 만큼 선거철에 수요가 집중된다. 수급 불안으로 나프타 가격이 오르고 현수막 수요가 공급을 웃돌면 단가 상승 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나프타 가격은 지난 24일 기준 t당 850.25달러로 전쟁 직전인 지난달 27일(554.27) 대비 53.4% 인상됐다.


정부가 나프타 수출 제한이란 초강수를 둔 만큼 석유화학 업계와 정치권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정부는 전날 국내 정유사가 생산한 나프타 수출 물량을 국내로 돌려 수급난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기업들이 나프타를 대체 항로로 수입할 경우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지원하겠단 뜻도 밝혔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수출 물량을 국내로 돌리면 석유화학 기업들이 가동률을 유지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며 "나프타의 생산·도입 물량을 의무적으로 보고받고 개선되지 않을 시 긴급 수급 조정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