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금융감독원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군대와 관련한 씁쓸한 소식을 들었다. 올해 기준 이병 월급은 75만원, 병장 월급은 150만원. 매월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이 넘는 돈을 쥔 젊은 사병들이 불법 도박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자금을 대주는 대부업체 금융상품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사회 경험이 있거나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사병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문제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대한 청년들이다. 생애 처음 매달 수십만원의 고정 수입을 손에 쥐게 됐지만 저축하고 굴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도박이나 과소비 유혹에 쉽게 휩쓸린다. 뭉칫돈 씀씀이를 몰라 보이스피싱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이 금융의 기초를 미리 배웠다면 그 돈은 제대 후 사회 진출을 위한 종잣돈으로 쓰였을 것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일탈의 원인으로 '스마트폰 보급'을 지목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비대면 대출과 투자가 가능한 고도의 디지털 금융 환경이 열렸다.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졌지만 이를 다룰 금융 지식은 그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변동장세 국면에서 반복되는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도 그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산업 성장성을 분석하기보다 소셜미디어(SNS)에 떠도는 소문에 휩쓸려 투자를 감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상자산이나 특정 테마주가 급등한다는 소식에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일으키기도 한다. 시장의 변동성을 간과하고 당장의 수익률에 눈이 멀어 감당하기 힘든 빚을 낸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닥뜨린 자본시장은 냉혹하다. 투자 실패로 인한 손실과 막대한 빚은 오롯이 투자자 본인의 몫이다.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투자 결정을 내리는 마지막 결정권자는 소비자 자신이다. 스스로 재무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은 국가도 금융사도 대신 메워주지 않는다. 수익을 좇는 만큼 위험을 안아야 한다.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자기 책임 원칙'은 현대 사회의 필수 생존 지식이다. 성인이 돼서 갑자기 큰돈을 만지거나 대출을 받게 됐을 때 비로소 이 원칙을 깨닫는다면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크다.


지난해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이 신설된 것은 반가운 변화다. 은행 예·적금의 복리 효과, 보험의 필요성, 주식 및 채권 투자의 실제 등 당장 현실에서 부딪히는 실용적인 지식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비록 수학능력시험 출제 과목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수능을 치른 뒤 남는 시간에 배우거나 2학년이 교양으로 이수하며 재무적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고 있다. 과거 주요 과목에 밀려 금융을 터부시하고 학생의 돈 이야기를 부적절하게 여겼던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자기 책임 원칙과 합리성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10대 시절부터 체계적인 교육으로 금융 체력을 다져야 한다. 소비와 저축의 균형을 맞추고 투자의 원칙과 위험성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된 변화가 청년들의 무모한 빚투 비극을 끊어내고 건강한 경제 주체로 성장하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똑똑한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기반도 한층 탄탄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