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AI비즈니스전공 교수


최근 내게 걸려 오는 전화의 발신지가 바뀌고 있다. 과거엔 기업의 전략기획 부서나 IT 팀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노사협의체나 노동조합 측의 연락이 부쩍 늘었다. 질문은 단 하나로 수렴된다. "AI 도입을 앞두고 있는데, 도대체 우리 노동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이 질문을 마주할 때 내 마음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우선 반갑다. 막연한 공포에 질려 눈을 감는 대신, 변화의 실체를 파악하고 대응하려는 의지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가 엄습한다. 대화를 나눠보면 AI 도입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라는 각론으로 들어가면 테이블 위에 올릴 어젠다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협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협의를 시작하려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은 올 초 현대차 노조에서도 그대로 펼쳐졌다.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공개되자 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노조 스스로도 덧붙였다.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반대가 아니라 논의 요청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가? 바로 거기서 말문이 막힌다.


지금 우리에겐 기술보다 질문의 설계가 시급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AI가 내 일자리를 뺏을 것인가?"라는 빈약한 질문에 갇혀 있었다. 이제 질문의 틀을 바꿔야 한다. X축을 현재와 미래로, Y축을 AI가 대체할 수 있는 것과 대체하면 안 되는 것으로 나누어 보자.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영역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이는 시간과 순서의 문제일 뿐, 거스를 수 없는 파도다. 진짜 핵심은 대체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기술 수준과 무관하게 인간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존엄과 가치의 영역이다. 어떤 업무를 효율화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인간의 손에 남겨둘 것인가를 논의하는 조직은 거의 없다.

우리가 겪는 혼란의 본질은 속도에 있다. 경제학자 카를로타 페레즈는 기술 혁명이 두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기술이 폭발하며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는 설치 국면과 새로운 법과 제도가 정착되며 번영을 이루는 전개 국면이다. 과거 산업혁명기에 이 과정은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 과정을 압축하며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가와 산업, 기업마다 서 있는 단계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어떤 곳은 여전히 디지털전환, DX의 연장선에서 프롬프팅 기법에 매몰되어 있고, 어떤 곳은 이미 AI 에이전트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2단계로 진입했다.


이 전환이 조직 내부에도 그대로 관통한다. AI가 실행의 상당 부분을 맡게 되면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지능의 종류 자체가 바뀌고 있다. AI는 지금 KPI, 정량, 효율 중심의 산업화 지능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동시에 구성원들을 "나는 왜 일하는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 앞으로 내몰고 있다. 일은 빨라지고 많아졌는데 공허하다는 감각. 이것이 지금 수많은 조직 구성원들이 느끼는 본질적 혼란이다. AI가 이미 점유한 영역에서 인간이 계속 다투려 한다면, 개인도 조직도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조직 구조도 함께 변하고 있다. 소수가 비전을 제시하고 다수가 실행하던 리더, 팔로워의 이분법은 끝났다. 이제 모든 구성원은 직급과 무관하게 리더처럼 사고해야 한다. 정답을 빠르게 수행하는 능력보다, 정답이 없는 안개 속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현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안타까운 장면도 자주 목격한다. 기업은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는데 구성원은 변화를 외면한 채 고용 보장만 요구하는 경우. 반대로 회사는 효율화에만 급급해 구성원이 새 역할을 배울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는 경우. 둘 다 지는 게임이다.

노사가 마주 앉기 전,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 조직은 AI를 통해 사업을 확장할 것인가, 효율화할 것인가? 그 방향에 따라 구성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 역할에 맞는 역량을 노사가 어떻게 함께 키울 것인가? 이 세 질문이 정리되지 않으면 협의 테이블에 앉아도 서로 할 말이 없다. AI 기술의 동향이나 프롬프트 작성법보다, AI와 인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을 직시하는 일이 먼저다. 테이블에 앉기 전, 우리는 먼저 이 거대한 질문들과 독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