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통기업의 경쟁력이 단순한 규모 확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신뢰 구조를 설계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황정원 기자


"과거 ESG가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내부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체계가 비용과 직결되는 시대입니다."


전 한국유통학회장이자 유통 거버넌스 전문가인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해법으로 지배구조 점검을 꼽았다.

서 교수는 지난 12일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거버넌스 리스크를 단순한 평판 문제가 아닌 재무성과를 흔드는 기업의 실질 비용 변수로 정의했다.


코스피 지수가 8000선에 근접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유통·식품업계는 증시 훈풍에서 비껴나 있다. 2026년 5월 기준 삼성전자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최대 2.7배까지 거론되는 반면 이마트·CJ제일제당 등 주요 유통기업은 0.2~0.6배 수준으로 청산 가치에도 못 미친다.

이 같은 저평가 흐름은 단순한 업황 문제를 넘어 기업 내부 구조에 대한 시장 신뢰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 교수는 투자자들이 단순한 자산 가치보다 지배구조를 통해 기업의 미래를 평가한다고 본다. 그는 "투자자들은 기업의 단기적인 실적보다 미래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본다"고 말했다.


PBR은 기업의 순자산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래 현금흐름 안정성과 지배구조 투명성이 함께 반영된다.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거나 책임 체계가 불명확할 경우 수익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이는 곧 주가 할인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식품 기업들의 저PBR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배경에도 이러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유통·식품업은 소비자와 직접 접점이 형성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거버넌스 문제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서 교수는 "디지털 시대 소비자는 기업 내부 이슈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평가한다"며 "제품의 질과 서비스가 상향 평준화된 시장에서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사회적 신뢰"라고 강조했다.

최근 유통가에는 지배구조 문제가 제기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티메프 사태로 불거진 모기업의 불투명한 자금 통제, 홈플러스 대주주 사모펀드(MBK)의 단기 수익 회수 논란, 남양유업의 옛 오너 리스크, 쿠팡의 노동·안전 책임 이슈 등 형태도 다양하다.

이들 사례는 양상은 다르나 ▲책임 구조의 불명확성 ▲의사결정 통제의 불투명성 ▲단기 이익 중심 경영이라는 공통된 문제를 드러낸다는 게 서 교수의 시각이다. 이러한 요인은 평판 훼손을 넘어 비용 증가와 성장 효율 저하로 이어지며 기업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MZ세대가 소비 주역으로 부상하면서 과거 방식의 기업 운영은 사회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불황기일수록 단기적 숫자보다 지속 가능한 신뢰 구조를 만드는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관점에서는 이러한 신뢰가 브랜드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투자자 관점에서는 장기적인 현금흐름 창출 능력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거버넌스는 소비와 투자 양 측면에서 동시에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남양유업의 흑자전환과 관련해 서 교수는 "경영권 교체 자체보다 기업 변화의 진정성을 소비자들이 다시 평가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식품 유통업은 일상적으로 소비가 발생하는 산업인 만큼 리스크 발생 시 브랜드 훼손 속도 역시 빠르다는 설명이다.

티메프와 홈플러스 사태는 소유 구조의 불투명성이 기업 리스크로 전환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모기업 큐텐의 불투명한 자금 운용은 대규모 피해로 이어졌고 홈플러스 역시 사모펀드 체제 하에서 단기 수익 중심 경영이 시장 신뢰를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쿠팡 사례 역시 단일 사건이 아닌 구조적 리스크로 해석된다. 서 교수는 단순한 사고 비용보다 운영·노동·규제 대응 비용이 동시에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에 주목한다.

그는 "쿠팡의 적자전환은 단순한 보상 비용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 성장 효율이 저하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에 대해서도 "플랫폼 혁신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 있는 거버넌스를 설계하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이마트-신세계푸드, 동원산업-동원F&B 등 최근 유통가에서 화제를 모은 자회사 상장폐지와 지배구조 재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서 교수는 "지배구조 재편은 의사결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시장에서는 누구를 위한 재편인지가 중요하다"며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가 아닌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가치는 단기 실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구조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배구조 신뢰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