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광장/정용관]청년은 진보나 보수의 예비군이 아니다
오세훈 찍고도 잠실로 몰려간 2030
승패보다 절차와 기본권 훼손에 민감
재선거 주장 거칠지만 이유있는 분노
그 에너지의 긍정적 승화 다같이 고민할 때
정용관 시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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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낯설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론의 연장선쯤으로 여겼다. 그러다 수만 명의 2030 청년들이 모여 "재선거"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졌다. "저건 도대체 뭘까." 이들 세대를 자주 접하는 한 중견 정치학자에게 물었더니 뜻밖에도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가 꼰대 같지만 철딱서니 없는 주장입니다."
선관위의 투표용지 관리 실패는 경악할 일이지만, 선거 자체를 무효로 하고 다시 치르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자칫 부정선거론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서울시장 재선거 요구는 법적으로 현실성이 희박하고 정치적으로도 설득력이 약하다. 그와 별개로 이번 현상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꽤 이례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거 논란은 승패에서 출발한다. 이긴 쪽은 결과를 수용하고 진 쪽은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집회에 나온 상당수는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던 청년들이라고 한다. 오 후보는 6만 표 차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누가 이겼는가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를 물었다. 승패보다 절차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우리는 극우도, 뉴라이트도 아니다. 그저 나의 권리(My Right)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의 말이다. 참정권과 기본권 훼손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2030세대의 정치 감각인지도 모른다. 불안한 경쟁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절차와 공정에 유독 민감하다. 입시와 취업, 병역과 부동산, 주식과 가상자산 시장을 거치며 규칙 하나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했다. 공정한 룰과 개인의 기본권 보장은 교과서 속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기성 정치권은 오랫동안 청년을 진보와 보수의 예비군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정치의 문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세대다. 특정 진영에 대한 소속감이나 충성심보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조직도 없고 지도부도 없다. 주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소통하고 연대한다. 중구난방처럼 보일 수도 있고, 종합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밑바닥에 하나의 감각이 흐른다는 점이다. "이건 아니잖아."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오자 정치권도 바빠졌다. 청년들의 문제 제기가 채 정리되기도 전에 각자의 해석과 주장들이 쏟아졌다. 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어느새 전국 재선거론으로 번졌고, 청년들의 분노는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 청년들도 재선거를 강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그들의 구호가 곧바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관위의 책임은 무겁다. 책임자 문책과 조직 혁신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과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민주주의는 완벽해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다. 실수와 결함이 있더라도 그것이 선거 결과를 본질적으로 왜곡하지 않았다면 결과를 존중하는 원칙 위에서 굴러간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선거는 끝없는 불복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문제 제기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선관위 사태가 이 정도까지 드러난 것도 결국 2030의 '주권 의식'과 '순수한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분노의 에너지가 정략적으로 왜곡되고 소비되는 것이다. 전국 재선거라는 억지 주장이 나오고, "오세훈 물러나라는 것이냐"고 반박하고, 그런 야권의 내분을 여권은 내심 즐기는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잠실에 모인 2030 청년들은 정치적 신념보다 삶의 불안이 더 큰 세대인지도 모른다. 코스피 상승장의 낙오자일 수도 있고, '거지맵'을 켜고 가성비 식당을 찾아다니는 청년일 수도 있다. 미래는 불안한데 자신을 대변해 줄 정당도, 믿고 의지할 기성세력도 찾지 못한 채 떠도는 '부유(浮遊) 세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들을 함부로 진보나 보수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오늘의 보수가 내일의 진보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진보가 내일의 보수가 될 수도 있다. 청년들의 분노, "이건 아니잖아"라는 외침은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에너지다. 잠실의 함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잦아들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잠재적 에너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 스스로 그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정치적·사회적 공간을 열어주는 것, 냉소와 환멸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기성 세대와 정치권의 책임이다.
그들의 분노는 숭고했지만 재선거 주장은 미숙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노 위에 서둘러 정치적 깃발을 꽂고 먹잇감 삼으려는 일부 퇴행적 정치세력의 행태는 그보다 훨씬 낯뜨겁다. 궁색하고도 초라하다. 돌아보니 정작 철딱서니 없어 보였던 것은 순수하지만 서툰 분노에 편승할 궁리만 한 그들의 낡은 습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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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시대 주필
안녕하세요. 동행미디어 시대 정용관 주필입니다.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