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오른쪽 다섯번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2일 인천 남동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를 찾아 개표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재임 중 세 차례 해외 출장에 배우자를 동반하고, 관련 비용을 선관위 예산으로 집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 의전서열 5위에 해당하는 선관위원장의 지위를 감안하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위원장은 2024년 7박 9일간 독일과 에스토니아를 방문하면서 부인을 대동했고 수천만의 선관위 예산을 썼다고 한다. 출장 명분은 해외 선거관리 기관과의 협력 방안 논의였다. 지난해 국제 네트워크를 증진한다는 목적으로 덴마크·스웨덴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부부 동반으로 갔고, 한 석에 1200만원이 넘는 비즈니스석도 이용한 걸로 나타났다. 2022년 호주와 뉴질랜드를 찾았을 때도 배우자가 함께했다고 한다.

공무원 여비 규정은 공무 수행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배우자에게도 여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배우자가 어떤 공적 역할을 수행했는지, 공식 초청이나 의전상 필요성이 있었는지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위원장의 지위와 역할에 상응하는 '예우'를 고려해 배우자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례'를 따른 것이고, 향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예산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전에도 위원장 출장에 배우자가 동반했는지, 비용이 근거에 맞게 제대로 지급됐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 검증이 필요하다.


더욱 의아스러운 대목은 선관위가 외부에 공개한 자료에는 배우자 동반 사실이 기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내부 문건에는 '부부 동반'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단순 누락이 아니라면, 선관위 스스로도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은 출장비 수천만 원의 적정성만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예외적 지위를 방패 삼아 조직 내부의 특권 의식과 폐쇄적 문화가 누적돼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얼마 전에는 선관위 직원들이 몰디브와 코타키나발루 같은 휴양지로 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부실 논란을 자초했는데도 직원들에게 예정대로 특별 수고비를 지급한다는 발상도 이해하기 어렵다.


선관위 개혁은 투표 업무와 관련한 규정 몇 개를 손질하는게 전부가 아니다. 조직 전체가 청렴성을 회복하고, 업무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이 수반돼야 한다. 선관위는 일반 행정기관과 다르다. 그 어떤 기관보다 국민의 신뢰를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에게 믿지 못할 집단으로 낙인찍히면, 선거가 의심받고, 결국 민주주의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