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의 모습. /사진=뉴스1


금융당국이 다시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카드론, 보험계약대출까지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며 가계부채 관리 수위를 높이고 있다. 증시 랠리 속에 빚을 내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 수요가 커지고, 부동산 시장으로도 자금이 흘러들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의 배경으로 주택거래 확대와 자산시장 자금 유입을 함께 짚었다.


수치만 보면 경고음은 분명하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다시 썼고 인터넷전문은행 신용대출 잔액도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어섰다. 카드론 잔액 역시 43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은행권뿐 아니라 카드론과 보험계약대출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불이 붙으면서 당국의 관리 대상도 전 금융권으로 넓어지는 모습이다.

당국 입장에서는 가계부채와 금융권 건전성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빚을 내 오른 주식이나 집을 샀다가 시장이 꺾이면 손실은 개인에게, 부실 위험은 금융권으로 번질 수 있다. 과열된 투자심리를 방치할 수 없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지금의 빚투 현상을 개인의 무분별한 투자 성향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이미 한 차례 '벼락거지'가 되는 경험을 했다.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했던 시기, 집을 갖지 못했거나 제때 사지 못했던 사람들은 자산 격차가 순식간에 벌어지는 현실을 목격했다. 성실히 저축한 사람보다 무리해서라도 집을 산 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큰 자산을 갖게 되는 장면도 봤다.

그 경험은 강한 학습효과로 남았다. 자산 가격이 오를 때 참여하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공포가 시장에 깊게 깔렸다. 지금 증시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모습을 보며 일부 투자자들이 신용대출과 카드론까지 동원하는 배경에도 이런 심리가 있다. 단순히 '빚내서 투자하지 말라'는 경고만으로는 이 흐름을 막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제도와 정책이 이 공포를 지금도 충분히 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거 사다리가 안정적으로 작동했다면, 근로소득과 저축만으로도 일정한 자산 형성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집값과 주가가 오를 때마다 참여자와 비참여자의 격차가 커졌고 정책은 대체로 자산 가격이 달아오른 뒤 대출을 조이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대출 규제도 필요하지만 사후적 총량 관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은행권 대출이 조여지자 카드론과 상호금융 등 비은행권으로 수요가 번지는 모습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특정 업권을 누르면 다른 업권의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현실화된 셈이다. 자금 사용처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업권만 압박하면 부채는 줄어들기보다 더 취약한 곳으로 숨어들 가능성이 크다.


결국 빚투를 막으려면 개인의 투자 판단만 문제 삼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투자자가 위험을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레버리지 투자는 단순한 투자 과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집값 급등기를 지나며 형성된 자산 격차의 기억, 노동소득만으로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체념, 정책이 늘 시장보다 늦게 움직였다는 불신이 함께 만든 결과다.

당국도 자금 흐름의 위험을 모르지 않는다.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은행권 규제 이후 비은행권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흐름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위험을 확인한 뒤 대출 창구를 조이는 방식이 반복될수록 시장에는 "정책은 늘 뒤따라온다"는 신호가 남는다. 과열을 식히기 위한 규제조차 늦게 등장하면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서둘러 올라타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출 조이기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해법이라기보다 최소한의 방어선에 가깝다. 다음 빚투를 막으려면 자산 가격이 급등한 뒤에야 대출을 누르는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벼락거지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은 시장이 달릴 때마다 다시 빚을 낼 것이다. 당국이 정말 줄여야 할 것은 대출 잔액만이 아니라, 빚을 내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