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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공식화하면서 전력·용수 확보 등 현실적 제약을 딛고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은 2035년까지 호남과 충청 등 지방에 200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회장은 전력·용수·인력 확보가 용이하고 정부의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된다는 이유로 광주를 반도체 신규 투자 후보지로 제시했다. 최 회장도 급증하는 메모리 수요에 대비해 광주 등이 위치한 서남권에 400조원을 투입해 새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의 무게는 규모에서 드러난다. 삼성은 이날 보고회 이후 글로벌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AI 데이터센터 건설 등을 위해 호남에 총 425조원(반도체 40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SK그룹은 2035년까지 AI데이터센터 구축에 1000조원, 반도체 생산기지 확대를 위해 1100조원 등 총 2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전문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의 변수로 ▲용수 ▲전력 ▲인재 ▲인허가 등 4가지를 지목했다. 호남이 부지로 거론되는 배경에는 용인의 한계가 있다.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이 더딘 핵심 원인은 전력과 용수다. 반도체 생산 라인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같은 첨단 설비를 24시간 돌려야 해 막대한 전력을 빨아들인다. 물도 마찬가지다. 웨이퍼(반도체 원판) 표면의 미세한 오염을 씻어내는 세정 공정에는 불순물을 거의 다 걷어낸 초순수가 끊임없이 들어간다.
"수자원 재처리 시스템·한빛 원전 활용해야"
첫째 과제는 용수다.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이날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국내 반도체 공정 전체에서 하루 200만톤 가까운 물을 쓰는 것으로 안다"며 "기후변화로 가뭄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 호남의 영산강과 섬진강 수계와 장기 수자원 계획에는 반도체 팹이 고려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하루 수십만톤 이상의 초순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광역 용수 공급망을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호남의 물이 충분하다는 쪽은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다.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성하고 가동하기 위한 용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수자원은 전부 빗물로 시작하는 만큼 현재 거의 다 버리고 있는 빗물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수자원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의 인텔과 TSMC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리조나는 사막 기후로 물 부족 지역이지만 인텔은 선제적으로 대규모 수자원 재처리 시설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쓴 물보다 더 많은 물을 환원하는 '넷 포지티브'(Net Positive)를 달성했다. 이는 반도체 공장의 물 확보가 단순히 댐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자본을 투입해 '수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축했느냐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는 전력이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상황에선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데이터센터도 가동이 안 된다"며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큰 규모의 안정적인 전원이 공급돼야 하는 반도체 산업단지는 전력 확보가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손양훈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인천대 명예교수)은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팹은 24시간 끊임없는 전기가 필요한데 에너지 간헐성이 높은 재생에너지와 ESS(에너지저장장치)로는 한계가 있다"며 "태양광은 4시간 정도만 발전할 수 있고 나머지는 ESS 배터리로 20시간을 유지해야 하는데 과학·공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윤종일 교수는 보완책을 제시했다. 윤 교수는 "반도체 공정 라인은 일체의 미세한 전압 변화도 허용되지 않는 첨단 공정"이라며 "재생에너지와 함께 호남 지역 내 기저 전원인 한빛 원전과 정밀하게 연계한 하이브리드 계통망 구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특히 주파수 안정성이 중요한데 태양광과 풍력은 바람이 불거나 해가 뜰 때 들어왔다가 빠지는 식이어서 전력망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어 대규모 ESS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이 충분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호남 지역에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하다는 점은 반도체 산업 입지 측면에서 타당성이 충분히 있다"며 "대부분은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불안정한 부분이 있다면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등으로 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박사 인력 정주 여건 마련해야"
셋째는 인재다. 첨단 팹의 성패는 사실상 전문 인력 확보 여부에 달렸다. 윤종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석박사급 핵심 엔지니어를 유치하려면 단순히 연봉을 더 주는 것을 넘어 교육·의료·문화 등 정주 여건이 결합된 종합 인프라를 마련해야 우수한 전문 인력을 유치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은 인허가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 직할 담당관을 통해 사업을 직접 챙긴다고 공언한 만큼 인허가 속도에 대해선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최 회장은 이날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저희가 9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반도체 인허가 문제로 계획 발표부터 준공까지 수년이 걸린 전례를 감안해 정부의 지원을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에선 주정부와 의회가 나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 덕분에 TSMC 공장의 경우 계획 발표 후 착공까지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 모두 중앙정부가 부지 선정부터 용수·전력 확보까지 한 번에 풀어주는 이른바 '원스톱 패스트트랙'을 가동하고 있다.
이종환 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집권 2년 차에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직접 챙기는 만큼 인허가나 토지 보상, 전력·용수 확보 등에서 속도가 붙을 수 있다"며 "반도체 팹 등 인프라를 신속히 구축하려면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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