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시평/김경희]포르투나와 비르투: 카르텔과 적통론을 넘어
운명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순혈과 계보가 아닌 다양성이 중요
축구도 정치도 닫힌 질서는 쇠퇴를 부를 뿐
공존의 비르투가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다
김경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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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두 개념은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ù)다. 포르투나는 운명의 힘이다. 인간의 예측을 넘어서는 급변성과 예측 불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정치공동체는 언제나 포르투나의 세계 속에 있다. 문제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는 바로 그 대응의 능력이다.
그것은 변화하는 상황을 읽고, 필요한 수단을 찾으며, 때로는 기존의 방식과 결별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다. 그러므로 비르투의 핵심은 유연성이다. 어제의 성공 방정식이 오늘의 족쇄가 되고, 한때의 승자가 돌연 패자로 자리바꿈을 한다. 비르투는 포르투나의 변화에 맞서 스스로를 변신시키는 역량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인간 개인은 본질적으로 유연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여기에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방식에 집착함으로써 그 경직성이 심화된다. 신중함으로 성공한 자는 과감함이 요구될 때도 여전히 신중하려 하고, 과감함으로 승리한 자는 침착함이 필요한 순간에도 돌진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결론을 내린다. 급변하는 포르투나에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군주 개인에 의존하는 군주정보다 다양한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공화정이 더 우월한 이유이다. 공화정은 다양한 기질과 능력을 가진 시민들에 열려있기에,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인물을 선발할 수 있다. 다양성 자체가 유연성이 되고, 포용이 곧 경쟁력이 된다. 공화정의 힘은 완벽한 개인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다른 능력들이 경쟁하고 조정되면서 공동의 문제해결 능력으로 전환되는 데서 나온다. 다양성은 장식이 아니라 포르투나에 맞서는 정치적 자원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 한국 사회에 회자되는 두 단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축구계의 '카르텔'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의 '적통론'이다. 전혀 다른 영역의 말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비슷한 사고방식이 있다. 카르텔은 능력보다 내부의 관계를 우선한다. 적통론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역량보다 과거의 계보와 충성의 순서를 앞세운다. 둘 다 열려있는 경쟁이 아니라 닫힌 인정의 체계다. 둘 다 다양성과 열린 역량보다는 동질적인 사람들끼리의 배타적 결속을 우선시한다.
축구든 정치든 누구 편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팀의 활력을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당의 지도자를 고르는 기준도 누가 더 순혈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누가 더 복잡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었는가여야 한다. 민생, 경제, 외교, 세대 갈등, 지역 불균형 같은 문제들은 계보의 언어로 풀리지 않는다. 물론 공동체에는 역사와 정체성이 있기에, 정당에는 노선이 있고, 조직에는 축적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전통은 능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계승은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신을 현재의 문제 속에서 새롭게 작동시키는 일이다. 핵심은 문제해결 능력의 증명이어야 한다.
포르투나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한국 사회의 문제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폐쇄적 카르텔과 배타적 적통론은 공동체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하게 만든다. 필요한 것은 자기편을 지키는 능력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능력을 활성화시키는 힘이다. 다름의 포용 속에 공존의 비르투가 필요한 이유이다.
김경희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키아벨리 및 르네상스 정치사상, 공화주의론, 국가론 등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서양정치사상 권위자다. 『공존의 정치: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새로운 이해』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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