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근 연세대 명예교수


내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발로 차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육상도 발로 하는 운동이지만, 공을 차면서 뛰지는 않는다. 발로 하는 축구는 특별히 손을 싫어한다. 공에 손을 대면 핸드볼 파울 휘슬이 울리고, 골대 앞에서 손을 대면 페널티 킥이라는 치명적인 벌을 받는다. 축구는 발과 머리, 심지어 몸통까지 허용하지만, 손만큼은 반칙이다. 인간은 손을 사용하는 영장류로 태어났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에서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규정했는데,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도구를 발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축구는 오직 발의 사용을 강제함으로써, 인간의 가장 고유한 특징과 장점을 통째로 부정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손으로 하는 일에 유독 뛰어나다. 중국 사람도 어색해한다는 철제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는 달인이 있는가 하면,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3D 적층 기술까지, 한국인의 손재주는 현란하기 그지없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속삭이듯 움직이는 임윤찬의 손가락을 보라. 배드민턴 채를 신들린 듯 휘두르는 안세영을 보라. 그들은 모두 손의 달인이며 진정한 '호모 파베르'이다. 그러니 월드컵에서 일찍 탈락한 우리 대표팀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축구를 손으로 했다면, 우리가 우승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스포츠의 필요성이 처음 대두된 것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 때문이었다. 기원전 800년까지 이어진 암흑기 동안 칼과 창, 화살로 너무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는 반성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776년 올림피아에 함께 모여, 이제부터는 싸우는 대신 싸우는 척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이것이 최초의 올림픽이다. 첫 종목은 약 180m를 달리는 스타디온, 즉 단거리 달리기였다. 이후 디아울로스(왕복 달리기), 돌리코스(장거리 달리기), 팔레(레슬링), 펜타슬론(5종 경기), 하르마토드로미아(전차 경주), 판크라티온(격투기), 퓌그메(복싱) 등이 순차적으로 도입되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두 전투에 필요한 기술이었으니, 스포츠가 전쟁을 대신한 것이다. 올림픽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탁월함(아레테)의 기준을 바꾸었다. 전쟁터에서 적을 쓰러뜨리는 용맹한 전사가 아니라, 경기장에서 빛을 발하는 선수에게 찬사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고대 올림픽에 축구가 없었다는 사실은, 축구가 전쟁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축구가 좋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서민적이고 평등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축구는 공 하나면 된다. 특별한 장비도, 넓은 시설도 필요 없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도 얼마든지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다. 역대 최다 우승국은 브라질이고, 직전 대회 우승국은 아르헨티나였는데, 둘 다 그리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 축구는 서민적이기에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 브라질 빈민가 출신 펠레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것이 그 증거이다. 그는 어릴 때 맨발로 양말 뭉치를 공 삼아 차며 축구를 배웠다. 축구는 출신 계급이나 신분이 아닌, 오직 실력으로 평가받는 운동이다.

나는 또 축구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 인생을 목격한다. 둥근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축구화 앞코 역시 직각이 아니라 완만한 타원형이다. 둥근 공이 둥근 축구화에 맞았을 때 어디로 날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에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은 축구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동네 축구에서는 이를 '똥볼'이라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똥볼'을 차며 살아가는가. 분명히 골대를 향해 찼는데, 어라, 공중으로 날아가네? 분명히 골문 안으로 찼는데, 이런, 골대를 때리네? 군 복무 시절, 혹한기 훈련의 일환으로 DMZ에서 보초를 선 적이 있었다. 그때 간간이 잡히던 북한 라디오 축구 중계 해설자의 긴박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우리 선수, 헐레벌떡 달려와, 뻥 찼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지 않은가. 헐레벌떡 달려와 힘껏 찼지만, 헛발질이었던 순간이 과연 몇 번이던가.


축구는 전쟁의 기억 없이 태어난 평화의 운동이자 평등한 스포츠라 좋고, 우리 인생을 닮아 더욱 좋다. 화려한 스타디움이 아니라 동네 공터에서, 골목길에서, 공 하나면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다. 찢어질세라 조심해야 하는 선수복이 아니라 청바지를 입고도, 반바지를 입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선수가 헛발질을 할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우리 인생을 꼭 닮은 운동이다.

이처럼 평화롭고 평등하며 철학적인 스포츠가 한국에서 위기를 맞아 모두가 아우성이다.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대표팀을 향해 맹렬히 달려드는 팬들은 전쟁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인가. 평등의 정신 위에 세워진 이 고귀한 스포츠를 특정 집단이 독점하여 카르텔을 형성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나는 한국 축구를 사랑한다. 선수들이 땀 흘리며 뛰는 모습에서 우리 인생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헐레벌떡 달려가 뻥 차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 아니겠나.



김상근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신과대학장, 연합신학대학원장을 역임했다. 그리스 로마 철학, 르네상스 연구의 권위자로 다양한 저서와 강연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의 설립과 운영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