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으로 성장세가 둔화된 국내 배터리업계에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새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인터배터리 2026'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전력망용 ESS가 전시돼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 파고를 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업계에 호재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 정부의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이 ESS 수요 확대 기대감을 키우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미국의 전력망 접속 규제 완화로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SK그룹·GS그룹·네이버 등과 협력해 2035년까지 총 18.4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1단계로는 총 8.4GW 규모(SK그룹 5GW·GS그룹 2.4GW·네이버 1GW)의 AI 데이터센터를 조성한다. 이후 정부와 SK그룹은 2035년까지 5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15GW 규모로 확장하는 2단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AI 데이터센터는 서버와 냉각 설비가 24시간 가동돼야 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 만큼 ESS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정전이나 순간적인 전압 불안정이 발생할 경우 서비스 중단은 물론 데이터 손상이나 장비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 ESS는 정전 발생 시 비상 발전기 가동 전까지 전력 공급을 유지하거나, 전력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경우 저장해뒀던 전력을 투입하는 등 데이터센터 운영 안정성을 높인다.


서남권(광주·전남)이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지로 선정된 것도 희소식이다. 태양광과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집중돼 있어 ESS 필요성이 커서다. 정부는 서남권(광주·전남)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활용해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ESS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발전량이 많을 때는 전력을 저장하고, 발전량이 줄면 저장해 둔 전력을 공급해 수급을 원활하게 한다.

특히 해상풍력 발전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시장이다. 현재 상업운전에 들어간 서남권(광주·전남)의 해상풍력 설비는 0.096GW 수준이지만 인허가 받은 설비는 21.3GW에 달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으로 해상풍력 시장 성장 속도가 가속화되면 그만큼 ESS 수요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도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수요처의 전력망 접속 관련 새 제도를 승인했다. 현재 수년이 걸리는 전력 공급 요청 처리 기간을 약 90일로 단축하는 대신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전력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에 자체 발전설비나 ESS를 활용해 전력 사용을 조절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번 제도 개편으로 북미 ESS 수요는 한층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허가에 소요되는 기간이 줄어 AI 데이터센터 증설 속도가 빨라지는 데다 신속한 인허가를 위해 계통 부담을 낮추고 운영 안정성을 높이는 ESS가 핵심 인프라로 취급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캐즘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배터리 기업들에게 ESS 시장 확대 흐름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며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모두 안정적인 전력 운용이 중요한 분야인 만큼 ESS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