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VIEW] 이란 '쿠란 정치'…사우디 조문단엔 '불신자' 비유
하메네이 장례식에 온 70여 해외 조문단에
각각 다른 의미 쿠란 구절 낭송…속내 드러내
사우디·튀르키예 비난, 하마스·탈레반 칭찬
조문단 자의적 평가하며 사실상 승전국 행세
'우리는 선, 상대는 악' 이란판 국제 진영정치
종전 이후 영향력 확대 전망…중동 불안 우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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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초대형 복합 종교·정치 시설인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모살라(테헤란 그랜드 모살라)'에서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 일가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미국-이란 전쟁 개전 첫날인 지난 2월 28일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미군의 최고지도자 거주지 공습으로 하메네이 본인은 물론 딸, 사위, 며느리, 외손녀 등 일가족이 숨졌다. 장례는 사망 126일 만인 7월 4일부터 9일까지 엿새 일정으로 진행된다.
장례 일정을 이란의 국교인 '이슬람 시아파 12이맘파'에서 가장 비통하고 성스러운 날로 치는 '아슈라(시아파가 추앙하는 무함마드의 외손자 이맘 후세인의 순교 추모일)'에서 40일 뒤인 '아르바인(거룩한 추모 기간)'에 맞춘 점도 눈에 띈다. 이번 장례식을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이란 신정 체제의 반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4일 행사가 열린 테헤란 그랜드 모살라는 축구장(7140㎡) 30개 크기인 22만3500㎡의 초대형 시설이다. 이날 행사에는 1200만~2000만 명(이란 당국 추산)의 국내 조문객과 70여 개 국가에서 온 외국 사절이 참석했다. BBC방송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는 조문 사절을 보내지도, 초청받지도 못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주이란 대사를 보내 조문하려 했지만, 이란은 대사급은 받지 않겠다고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 도하 기반의 알자지라 방송 등에 따르면 장례식을 주관한 이란 당국은 70여 개 국가에서 온 외국 조문객이 하메네이 가족의 관 앞에서 조문할 때 이슬람 경전인 쿠란 낭송을 내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별로 서로 다른 구절을 낭송했는데, 해당 구절이 국제정치적으로 대단히 상징적이어서 이번 전쟁에서의 협력 또는 대립은 물론 전후 관계 설정에 대한 이란 당국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알자지라와 영국 런던 기반의 중동·북아프리아(MENA) 전문 디지털 미디어 '미들 이스트 아이(MEE)', 94년 전통의 인도 영문일간지 '더 인디아 익스프레스' 등이 낭송된 쿠란 구절을 부분적으로 보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쿠란 한글 번역에서 구체적인 구절을 찾아 소개하고, 그 맥락과 종교적·국제정치적 의미를 분석해본다.
이란과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왈리드 알쿠라이 외교부 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테헤란에 보냈다. 알쿠라이 부장관이 하메네이 가족의 관 앞에 조의를 표하자 이란 당국은 쿠란 제3장 알에임란(임란의 가족) 13절 낭송을 내보냈다. "이미 너희를 위해 계시가 있었노라. 두 부대가 전쟁을 하매 한 부대는 알라(유일신인 하느님)의 길에서 싸웠고, 다른 부대는 믿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숫자는 곱절이었도다. 그러나 알라께서는 그분의 뜻에 따라 승리를 거두시니 실로 이것은 눈을 가진 자들을 위한 교훈이라."
이는 서기 624년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313명의 무슬림(이슬람교도)을 이끌고 1000명에 이르는 '불신자' 쿠라이시 부족의 중무장 군대와 싸워 이긴 바드르 전투를 다룬 구절이다. 바드르는 사우디의 이슬람 성지인 메디나 인근 지역이다. 쿠란에 따르면 알라는 바드르 전투에 수천 명의 천사를 보내 신자들을 돕고 불신자들을 물리쳤다. 이 구절은 군사적 승리가 무력이 아니라 알라에 대한 믿음과 순종, 진실한 의도에서 온다는 이슬람 신학적 교훈을 강조한다. 사우디 사절단에게 쿠란의 이 부분을 들려준 것은 미국과의 전쟁 기간에 사우디가 사실상 미국 편을 든 데 대한 이란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1세기 국제정치 상황에서 벌어진 미국-이란 전쟁과 중동 국가들의 정치적 판단을 이슬람 초기인 7세기의 종교 전쟁과 비교하면서 사우디를 에둘러 비난한 셈이다.
반면 이란과 미국의 중재를 도왔던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 조문단에게는 쿠란 제17장 알이스라(밤의 여행) 제80절을 들려주며 대놓고 찬사를 보냈다. "주여, 저로 하여금 진실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여 주소서. 그와 마찬가지로 진실의 출구로 나오게 하여 주시고 당신 가까이에서 승리의 권한을 부여하여 주소서."
파키스탄은 정부 수반인 총리 셰바즈 샤리프가 정권 실세인 육군 참모총장 아심 무니르와 함께 조문단으로 참석했다. 이런 파키스탄에 대해 이란이 감사하고 종교적으로 축복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파키스탄과 앙숙이며 이스라엘과 관계강화에 나섰던 인도의 조문 사절에게 이란 당국은 쿠란 제3장 알에임란(임란의 가족) 제174절을 낭송하며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무리가 그들에게 말하길, 많은 군중이 너희에게 대항하여 오나니 그들을 두려워하라. 그러니 그들의 신앙은 더욱 두터워졌으니 그들이 말하더라. 우리는 알라만으로 만족하나니 승리는 그분에게 의탁하는 자에게 있노라."
적이 몰려들 때도 신앙을 굳게 지키고 알라를 신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힌두 국가 인도의 14억 인구 중 약 2억 명(약 14.2%)이 무슬림인 사정을 감안해 최소한 이란에 등을 돌리지는 말아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도는 28개 주와 8개 연방 직할지의 하나인 동북부 비하르주의 시예드 아타 사스나인 주지사와 영화배우 출신인 파비트라 마르게리타 외교부 부장관 겸 섬유부 차관을 보냈다. 낮은 급의 사절을 보낸 셈이다.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을 사이에 둔 카타르는 단원제 입법 기관이자 최고 자문 기구인 슈라 위원회(Qatar Shura Council)의 하산 빈 압둘라 알가님 의장을 조문 사절단장으로 보냈다. 이란 당국은 이들에게 쿠란 제48장 알파트흐(승리) 제2절을 들려줬다. "그것은 알라께서 지나간 그대의 과오를 용서하고 그대에게 그분의 은혜를 충만케 하며 그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이는 알라의 용서를 구하고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관계 상태를 유지하길 바란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카타르에는 중동 최대의 미 공군기지인 알우데이드 기지가 있어 이란은 이번 전쟁 기간에 수시로 미사일과 드론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카타르와 이란은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에 있는 세계 최대 해저 가스전인 파르시Ⅰ과 파르시Ⅱ를 공유하고 있어 서로 적대할 수만은 없는 관계다.
이슬람 국가 유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이번 전쟁 기간 중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모호한 위상을 유지했던 튀르키예에 대해 이란은 싸늘한 입장을 보였다. 튀르키예는 형식상 정부 서열 2위인 제베데트 유르마즈 부통령이 참석했다.
튀르키예 사절단에게 이란 당국은 쿠란 제4장 안니사(여성) 제95절을 낭송했다. "아무런 장애도 없이 남아있는 믿는 자와 성전에 출전하여 재산과 생명을 바쳐 성전하는 투사들이 같을 수 없거늘, 알라께서는 재산과 생명을 바쳐 성전하는 이들에게는 남아있는 자들보다 더 큰 은혜를 베푸시며 또한 두 부류에게도 알라의 보상이 약속되었노라. 알라께서는 (뒤에) 남아있는 이들보다 성전에 나선 이들에게 크나큰 은혜를 주시니라." 이는 알라의 길에서 노력하는 자들의 위계질서를 언급하는 내용이다. 즉, 적극적으로 이란 편을 들지 않은 튀르키예에는 앞으로 별다른 보상이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나타낸 셈이다.
2022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해 1000여 명을 살해하면서 가자전쟁을 촉발한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도 사절단을 보냈다. 가자지구에서는 외부로 이동이 불가능하므로 이들은 걸프 지역 도시에서 활동하던 대원으로 보인다. 하마스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시아파 무장단체와 함께 중동의 대표적인 이란 프록시(대리세력) 중 하나로 꼽힌다.
이란 당국은 이들에게 칭찬 메시지가 담긴 쿠란 구절을 낭송했다. 쿠란 제33장 알아흐잡(동맹군) 제23절이다. "믿는 사람 중에는 그들이 알라께 약속한 성약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중에는 그들 맹세를 다 하는 자 있으며 아직 기다리는 자들이 있으나 그들은 결코 그들의 결심을 바꾸지 아니 하니라." 이는 알라에 대한 믿음의 약속을 지키고 싸움을 계속하는 자들을 칭찬하는 내용이다.
이란과 국경을 맞댄 반미·이슬람주의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은 아미르 칸 무타키 외교부 장관이 먼저 테헤란이 도착했으며, 압둘 가니 바라다르 경제 담당 제1 부총리가 뒤이어 합류했다. 이란 당국은 아프가니스탄 조문단에게 하마스와 동일한 쿠란 구절을 낭송했다.
하메네이의 장례식에는 이란과 가까운 비무슬림 국가에서도 조문단을 보냈다. 러시아는 전직 대통령으로 연방안전보장회의(SCRF) 부의장(의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자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당수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헌법 규정 때문에 3연임을 하지 못하고 실세 총리를 맡고 있던 2008~2012년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14명 중 한 명으로 중국적십자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허웨이(何维)를 파견했다. 의사 출신인 허 부위원장은 중국공산당 소속이 아니라 중국농공민주당의 주석이다. 이 정당은 공산당과의 통일전선에 참가하고 있는 위성정당이다.
이란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캅카스의 기독교 국가 조지아에선 미헤일 카벨라슈빌리 대통령이 참석했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는 한때 친서방 노선을 걸었지만 2008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주권과 영토를 잠식당했다. 2012년부터는 친러시아 성향의 '조지아의 꿈'이 집권하면서 반서방, 친러, 친이란 행보를 보여왔다. 이란 석유를 수입하고 서방 제재를 피해 이란에 물자를 공급해온 것으로 관측된다.
1991년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캅카스의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에선 니콜 파슈니안 총리가 테헤란으로 달려왔다. 아르메니아는 2023년 숙적인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의 군사적 협력으로 승전하자 친이란으로 노선을 틀었다.
중앙아시아 국가 타지키스탄은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이 참석했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이슬람국가 타지키스탄은 이란의 국어인 파르시(페르시아어)의 한 종류인 타직어를 공용어로 쓴다. 사실상 같은 언어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단절돼 있는 데다 이번 전쟁 기간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란은 여러 나라 조문단을 모아놓고 '코란 정치' '장례식 외교'를 벌인 셈이다. 전후 중동을 우리가, 우리 식대로, 우리를 위해 휘두르겠다는 야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국내를 단결시키고 외국에는 경고를 보내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이란이 알리 하메네이 일가 장례식에서 조문온 국가들을 하나하나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편을 나누는 모습은 중동지역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자세는 평화가 아닌 패권을 추구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에서 진영논리를 앞세우는 이란의 장례식 외교를 보면 전후 중동 상황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평화협상이 마무리되고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면 이란이 자칫 패권주의적 태도로 주변국과 호르무즈 해협을 압박하면서 중동 지역 전체를 불안하게 할 우려를 자아낸다. 승자의 입장과 패권주의적인 태도가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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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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