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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어느 집이든 사람이 임종을 맞으면 곧장 관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방 한쪽에 병풍을 두른 뒤 대나무로 엮은 칠성판을 펴고 그 위에 망자를 모신다.
대나무의 성질은 차다. 살아 있는 체온의 흔적을 지우듯 서서히 식어가는 육신을 받아낸다. 바람이 통하고 습기가 빠지는 칠성판 위에서 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
그 시간은 단순한 정리의 시간이 아니다. 남도에서는, 적어도 필자가 본 그 장면에서는, 그 시간을 확정된 죽음의 이후라고 부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숨이 정말 끊어진 것인지 다시 살피고 누군가는 혼이 아직 떠나지 않은 건 아닐까를 말없이 가늠한다. 아무도 크게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그 묘한 침묵 속에는 하나의 공통된 태도가 흐른다.
"조금 더 두고보자."
칠성판은 그래서 기묘한 자리다. 이미 끝난 것 같지만 아직 끝났다고 단정하지 않는 자리.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게 하는, 어쩌면 돌아올 가능성까지 완전히 닫지 않는 경계의 공간이다. 그 위에 놓인 존재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채, 시간만이 조용히 판가름을 대신하는 상태로 머문다. 오래전 그 장면을 보며 죽음이란 단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둘러앉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홈플러스 사태는 '치료'와 '연명'의 경계가 불분명해 보였다. 다시 살릴 의지인지 시간을 벌기 위한 버팀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업을 살리려는 노력보다 상태를 유지하는 데 더 가까워 보였다.
칠성판 곁에는 끝까지 눈을 떼지 않는 사람이 있다.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 말이다. 홈플러스를 둘러싼 시간에는 그런 기척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칠성판 위에 올려놓고는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이 사라진 형국처럼 말이다. 기업의 실패에도 끝까지 감당해야 할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함께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이제는 그 긴 시간마저 끝을 향해 가는 듯하다.
홈플러스가 보여주는 풍경은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다. 책임의 부재가 어떤 상태를 만들어내는지를 드러낸다. 아직 보내지도, 되살리지도 못한 채 그대로 놓여 있는 것. 그것이 지금 홈플러스가 올라앉아 있는 자리이며 MBK가 남긴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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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 기자
박정웅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