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리센느(RESCENE) 원이/ 사진=스타뉴스


"어디 가노?" vs "어디 가나?"


영남 방언에서 이 두 표현은 완전히 다른 질문이다. '어디 가노?'는 행선지를 묻는 반면 '어디 가나?'는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 또는 외출하는지 여부를 묻는다.

이 고유한 언어 체계에서 의문형 어미 '노'와 '나'는 다른 용법을 지닌다. 대개 '노'는 어디, 언제, 왜, 뭐 등 의문사가 있는 의문문 끝에 붙는다. 의문사 없는 의문문에 '노'가 붙으면 어색하다. 예컨대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는 흔히 쓰이지만, '느그 아부지 하시노?'는 전통적 영남 방언으로 보기 어렵다.


필자를 비롯한 영남 네이티브 스피커들 입장에선 의문사 없는 '가노?' '하시노?' 등의 표현은 가끔 불편함을 유발한다. 외국인이 뜨거운 된장찌개에 찬물을 붓는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피자에 파인애플을 올리거나 스파게티 면을 부러뜨리는 모습을 본 이탈리아인이 이런 기분일까.

그러나 어쩌겠나. 위화감은 주지만 직접적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닌데. 그냥 듣고 넘길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오지랖을 부려 "가노는 일베식 표현"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은 정치적 의도 없이,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말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스위스 출신의 정치 사상가 뱅자맹 콩스탕은 "근대적 자유(liberty)의 핵심은 사생활을 국가와 다수의 시선으로부터 지켜내는 데 있다"고 했다. 콩스탕은 '고대인의 자유'와 '근대인의 자유'를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고대인의 자유'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나 공화정 시대 로마에서처럼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말한다. 반면 '근대인의 자유'는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이는 훗날 영국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이 주창한 '타인의 간섭으로부터 내버려질 자유', 즉 '소극적 자유'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 단체 '패트리어트 프런트'(Patriot Front) 소속 회원 수백명이 미국 250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은 4일(현지시간) 흰색 복면과 모자 등 동일한 옷차림을 한 채 워싱턴DC 대중교통에 탑승했다. 한 흑인 승객이 긴장한 채 이들에 둘러싸여 있다./로이터=뉴스1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도 그 말을 쓰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 표현이 누군가에게 상처나 피해를 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끝난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역작 '자유론'에 남긴 이 문장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까지 허용할 순 없다는 얘기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 피해자와 소수자의 상처를 의도적으로 들쑤시는 행동을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으로 감싸주긴 어렵다. 지난 4일 미국 건국 250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백인우월주의 단체 '애국전선(Patriot Front)' 회원 400여 명이 복면을 쓴 채 남부연합기를 앞세우고 워싱턴 D.C. 한복판을 행진했다. 과거 흑인들을 폭행·살해한 KKK단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행동까지 표현의 자유라며 품어줄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칼 포퍼는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관용의 역설(paradox of tolerance)'을 강조했다. 무제한의 관용은 결국 불관용한 세력이 사회를 통째로 차지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관용 그 자체를 파괴하고 만다는 경고다.

자유와 관용의 경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걸 누군가 획일적으로 정하는 순간 독재가 된다. 그러나 간극을 좁힐 순 있다. 사회적 숙의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최근 걸그룹 리센느(RESCENE) 원이를 둘러싼 '무섭노' 논쟁과 배재고 등의 '스타벅스' 논란이 갈등만 증폭시키는 소모적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대신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