쳔연가스 수출로 번영하는 카타르 수도 도하의 스카이라인. 카타르를 강소국으로 만든 개혁군주 하마드가 12일 별세해 정부는 14일 조전을 보내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등 조문단을 파견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중동 국가 카타르의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전 에미르(이슬람 군주)가 7월 11일 별세했다. 74세. 하마드는 1995년부터 18년간 카타르를 통치하며 천연가스(LNG) 개발을 지휘해 고도 경제성장과 국가 현대화를 이끌었다. 1996년 사실상 중동 유일의 자유 미디어인 알자지라 방송을 설립해 간섭 없이 지원만 하면서 2010년 '아랍의 봄' 보도 등으로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2002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고 2022년 FIFA 월드컵을 유치해 국가 위상을 높였다. 2013년 아들인 타밈에게 에미르 자리를 양위하고 13년간 '상왕'으로 지내다 이날 세상을 떠났다. 우리 정부는 14일 조전을 보내고 카타르의 요청에 따라 이전에 카타르를 방문한 적이 있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조문 특사로 파견했다.

카타르의 에미르(이슬람군주) 하마드가 2003년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오벌룸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카타르는 별세한 하마드가 통치하던 2000년대에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생산 증대를 바탕으로 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고 부국강병을 추진해 글로벌 강소국으로 우뚝 섰다. 하마드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쿠데타와 양위, 그리고 왕세자 교체, 상왕으로서의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조선 개국 초기 태종 이방원을 떠올리게 한다.


이방원은 1차(1398년)와 2차(1400년) 왕자의 난(쿠데타)을 통해 부친 태조 이성계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아울러 18년간 왕위에 머문 뒤 1418년에 셋째 아들이자 왕세자였던 충녕대군 이도(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양위했다. 충녕대군 이전에 장남 양녕대군 이제를 왕세자로 삼았으나 행실과 능력 문제로 폐세자하고 충녕대군 이도로 왕세자를 교체했다. 상왕으로 물러난 뒤에도 핵심 권력은 계속 장악했다.

하마드는 왕세자 시절인 1995년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스위스에서 요양 중이던 부왕(父王) 할리파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야심가였다. 부왕이 왕세자에게 부여했던 관한의 일부를 다시 가져가자 부자 사이에 불화가 생겼으며 결국 무혈 쿠데타로 이어졌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보면 왕위 찬탈이다.


할리파는 에미르에서 밀려난 뒤 9년간 파리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2004년 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그대로 머물렀다. 아들인 하마드를 거쳐 손자인 타밈이 에미르를 맡고 있던 2016년 84세로 별세했으며 카타르 정부는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해 예우했다. 무언의 화해였다.

카타르의 수도 도하의 거리 전광판에 12일 상왕 하마드의 별세 소식을 알리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18년간 카타르를 통치하고 양위 뒤 13년간 상왕으로 지냈다. /로이터=뉴스1


하지만 하마드는 18년 동안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가난한 카타르를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강소 부국'으로 바꿔놨다. 거기에다 중동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해 경기장과 신도시를 신·개축하면서 수도 도하와 국가의 면모를 바꿔놓았다.
하마드는 2013년 6월 자신의 18년 통치를 단 7분의 짧은 국영 TV 연설로 마감하고 31세의 아들 타밈에게 양위했다. 하마드는 "이제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내줄 때가 됐다"고 말하고 양위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당시 AP통신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추정했다.


사실 1995년 쿠데타로 밀려난 할리파 자신도 총리이자 왕위 계승자 시절이던 1972년 에미르이자 사촌인 아흐마드가 이란을 방문하는 동안 무혈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군주가 됐다. 할리파는 즉위 즉시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고, 동생인 수하임에게 외교부 장관을 맡기는 등 가족 통치를 강화했다. 폐위된 아흐마드는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1977년 5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하마드가 생전에 유치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포르투갈이 경기를 펼치기 직전 양국 국기가 전시되고 있다.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음이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이러한 궁정정치의 정치적 파행을 목격한 하마드는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후계자를 정했다. 태종 이방원과 비슷하게 왕세자를 교체하면서 마음에 드는 아들을 후계자로 골라 양위까지 했다.
하마드는 세 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11남 13녀, 총 24명의 자녀를 얻었다. 제1 부인인 마리암 빈트 무하마드 알사니는 조카로 둘 사이에 2남 6녀를 뒀다. 대개의 아랍 사회에서 조카와의 결혼은 문제가 없다.
제2 부인인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나드(54)는 카타르 호족의 딸이다. 5남 2녀를 낳았다. 제3 부인인 셰이카 누라 빈트 할리드 알사니는 왕족인 내무장관의 딸로 4남 5녀를 낳았다.

세 명의 부인 사이에서 많은 아들을 둔 하마드는 가장 총명해 보이는 세 명에게 차례로 왕세자 자리를 맡겨 능력을 시험했다. 우선 제1 부인 마리암 사이에서 얻은 장남 미샬에게 왕세자를 맡겼다. 23세 때인 1995년 왕세자에 책봉돼 외교부에서 일하던 미샬은 1년 뒤에 하마드의 차남이자 제2 부인 모자의 첫째 아들인 야심에게 자리를 넘기고 아랍승마협회장을 맡았다.
야심은 부왕만큼 야심가였으며 보건의료, 국민화합, 환경 및 자원, 스포츠 분야를 총괄했지만 지나친 의욕이 부왕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7년 만인 2003년 왕세자 자리에서 밀려났다.

지난 6월 21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미국의 JD 밴스 부통령과 제러드 쿠슈너, 파키스탄의 세바즈 샤리프 총리, 이란의 아바스 아라크치 외교부 장관과 중재국 카타르의 대표 등이 만나고 있다. 여러 세력과 고루 잘 지내는 실용국가 카타르는 중동의 중재국가로 명성이 높다. /로이터=뉴스1


그 뒤를 하마드의 4남이자 제2 부인 모자의 둘째 아들인 타밈이 이었다. 10년 뒤인 2013년 하마드는 타밈에게 에미르 자리를 양위했다. 현재 에미르인 타밈은 1998년 부친이 졸업한 영국의 샌드허스트 사관학교를 마치고 카타르군 소위로 임관했다. 2003년 왕세자에 오른 뒤 안보·경제 분야의 요직을 차례로 맡았으며 특히 국책 스포츠 사업을 주도했다. 메디컬 시티, 에듀케이션 시티 등을 건설해 중동의 소프트파워 국가로 키워가고 있다.

2009년 카타르군 부사령관에 올랐으며 2011년 무아마르 카타피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시민혁명을 이룬 리비아 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카타르군 전투기가 나토군과 나란히 리비아 정부군을 폭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중동 전역에서 카타르의 국가 위상을 높였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는 사우디와 함께 반군에 돈과 무기를 지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서 내리고 있다. 트럼프는 카타르로부터 선물받은 보잉-747 여갹기를 자신의 전용기로 삼았다. /로이터=뉴스1


하마드가 선택한 타밈의 통치 기간에 카타르는 중동에서 미국·이스라엘·이란 모두와 잘 지내는 드문 나라가 됐다.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경제적 지원을 꾸준히 한 덕분에 하마스 같은 아랍 무장 정파와도 대화가 통한다. 때때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중재를 주선하기도 하는 이유다. 다만 이슬람 무장단체와 잘 지내는 바람에 이들의 세력 확장을 두려워하는 중동 군주국이나 권위주의 국가의 견제 대상이 되고 있다.

타밈은 부왕인 하마드와 마찬가지로 발상이 대담하며 안목이 국제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는 평가받는다. 하마드의 후계자 선구안이 정확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태종 이방원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상황 때문에 가스와 석유에 의존하는 카타르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는 점은 문제다. 날아오는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을 막을 방공 무기도 더 필요하다. 한국과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카타르는 어떤 나라>
카타르는 중동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연안에 있는 인구 320만 명의 아랍국가다. 인구의 절반 정도만 아랍인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인도·방글라데시·파키스탄·스리랑카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국토 면적은 1만1581㎢로 한국의 인천이나 울산보다 조금 넓다. 유일하게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댄 반도 국가다. 세계 3위의 천연가스 매장국이자 수출국이다. 가스와 석유가 주요 수출품으로 한국과는 천연가스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란의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약속 이행이 힘들다는 통보를 해왔다. 한국은 카타르 전체 수출의 15.6%를 차지해 일본(17.1%)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5년 1인당 GDP가 명목 금액 기준 7만2760달러로 세계 7위, 구매력 기준 11만8760달러로 세계 4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