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 나노기술융합전시회 삼성전자 부스에 종합 반도체 솔루션이 전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월 수출 1000억달러. 지난 6월 우리나라 수출은 1022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독일,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월 1000억달러 고지를 밟았다. 주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올해 6월 반도체 수출은 448억2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99.5% 늘었다. 전체 수출의 43.8%다.


지난 20일 새벽(한국시간) 막을 내린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처음과 끝도 한국 가수가 장식했다. 지난달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스타디움 개막식에서 가수 이재(EJAE)는 세계적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공식 주제가 'DNA'를 한국어 노랫말로 이어 불렀다. 결승전 하프타임 쇼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이 '다이너마이트'를 열창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로 바뀐 곳이 우리나라다. 국력과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넘은 기업과 기업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83년 2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알린 '도쿄선언'을 내놓았을 때 세계는 비웃었다.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까지 제기했다. 작은 내수시장, 취약한 관련 산업,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열악한 기업 규모, 빈약한 기술이 근거였다. 그해 12월 삼성은 64K D램 자체 개발에 성공했고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반도체 기술 보유국이 됐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회사로 우뚝섰다.


500원 지폐의 거북선 그림으로 영국 은행을 설득하고 조선소와 유조선을 동시에 지어낸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도전도 같은 계보다. SK하이닉스의 뿌리도 정 회장이 세운 현대전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하이닉스를 품을 때도 논란이 컸다. 2011년 인수를 결정하고 이듬해 2월 3조4000억원을 들여 채권단 손에 있던 하이닉스를 계열로 편입하자 회사 안팎에서 우려가 쏟아졌다. 그 하이닉스는 AI 시대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굴곡의 성장사에는 눈을 감은 채 지금 우리 사회는 천문학적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에만 몰두하고 있다. 성과급을 둘러싼 논란, 초과 이익과 초과 세수 논의가 대표적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5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 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성장이 필요하다면서도 성장하는 기업을 도와주는 제도는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최종 팹 완공을 최대 12년 앞당기기로 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조차 전기와 용수 확보가 관건이다.


지금의 호황은 미국의 중국 견제가 만들어낸 지정학적 특수(特需)에 가깝다. 온기는 반도체 산업에만 머물고 있다. 지난 6월 고용률은 63.4%로 석 달 연속 내려앉았고 청년층 고용률은 43.9%로 26개월째 내리막이다.

경쟁 기업의 실탄 확보는 위기감을 키운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지난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해 579억2000만위안, 한화 약 12조5000억원을 조달했다. 초과배정옵션이 전량 행사되면 조달액은 14조원을 넘는다. CXMT의 세계 D램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4.7%에서 올해 1분기 7.6%로 뛰었다.

중국 기업은 국가 자본에 자본시장 실탄까지 얹어 반도체에 쏟아붓는데 우리 기업이 처한 현실은 다르다. 경영권 방어 수단을 잇달아 걷어낸 '상법 3종 세트', 연구개발 현장에도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주52시간제, 처벌 요건이 모호한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 경영을 옥죄는 제도는 더 늘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를 앞으로 밀고 가는 힘이 자본과 제도가 아닌 낡은 것을 부수고 새 길을 여는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라고 했다. 도쿄선언이 그랬고 하이닉스 인수가 그랬다.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최태원 회장이 하이닉스를 품어 키우지 않았다면 월 수출 1000억달러는 없었다.

이익 분배의 셈법을 논하기보다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토양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상황이 바뀌면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제도를 만드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의 태도 역시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