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전 KAIST 총장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조현호 기자


-7월 2일에 퇴임하셨으니 그간 몇 주가 흘렀네요. 어떻게 지내십니까?
▶편하고 좋네요. 일단 잠이 잘 와요. 전에는 자다 깨고 그랬는데, 요새는 깨는 법이 없어요. 여유 있게 밥도 먹으러 다니고 전시장도 다니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안사람과 서해 쪽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천, 군산, 선유도를 둘러봤어요.
-군산은 고향(전북 정읍)과 가까운 곳 아닙니까?
▶군산에 처음 가봤어요. 우리나라에 참 좋은 곳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총장 하느라 통 여행을 못했어요. 곧 동해 쪽도 가보려고 합니다.
-KAIST 총장을 5년 넘게 하셨는데, 이례적인 것 아닌가요?
▶임기는 4년인데 후임자에 정해지지 않아 1년 4개월을 더 했죠. 예전에 딱 한 분, 서남표 총장이 연임을 했으니 KAIST 역대 총장 중에는 제가 둘째로 오래 한 사람이죠.
-2년 전 새 총장 뽑을 때 연임 의지를 밝히시기도 했었는데, 조금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으십니까?
▶전혀요. 지금 물러나는 게 너무 잘됐어요. 2년 전에는 시작하고 끝내지 못한 게 많아서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부터 지금까지 2년 새 마무리를 다 했어요. 원 없이 다했어요.
-정말 아쉬움이 없습니까?
▶2년 전 연임에 도전하려고 할 때도 저 개인을 위해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항상 마음속에 10년 후, 20년 후에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요. 그때 지금 나와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끝내지 못한 게 있어서 갈등이 생겼죠. 그런데 후임자가 안 정해져서 임기가 계속 늘어나자 밖에서는 리더십 공백이니, 뭐니 말들을 했지만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어요. 그 연장된 시간에 이뤄진 것이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게 딱 알맞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추가 시간'에 포스트닥 500명 재원 마련

-축구의 '추가 시간'에 골이 막 터진 건가요?
▶네, 중요한 일들을 해결했어요. 우선 KAIST 실리콘밸리 캠퍼스를 만들었어요. 만들려고 무척 애를 썼는데도 잘 안 됐거든요. 둘째로 KAIST 안에 인공지능(AI) 칼리지(단과대)를 설립했어요. 셋째로 포스트닥(박사후) 제도를 확립했어요. 미국의 좋은 대학에서는 포스트닥 연구원들이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에 자리를 잡고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결국 포스트닥이 미국과 한국의 연구력 차이를 만듭니다. 지난 1년 반 사이에 KAIST가 포스트닥 연구원 500명 분 예산 600억원을 확보했어요. 포스트닥 연구원 500명에게 9000만원의 연봉을 줄 수 있게 된 겁니다. 지난해부터 고급 인재의 해외 유출을 걱정하는 여론이 끓어올랐잖아요.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결심을 한 거죠. 이렇게 제가 바라던 일들이 세 가지나 성사됐습니다.


이광형 전 KAIST 총장과 이상언 '동행미디어 시대' 제도혁신연구소장이 지난 24일 서울 세빛섬 라운지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조현호 기자


-KAIST에서 교수로, 총장으로 총 41년 계셨습니다. 지난 세월을 어떤 시간이라고 정의하십니까?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교수 시절에는 우수한 학생들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행정을 할 때는 도와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41년 전 교수가 됐을 때 아버지가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광형아, 너는 어떤 교수가 될래?"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은퇴할 때 존경 받는 교수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취지로 말씀을 드렸죠.
-과거 인터뷰에서도 아버님에 대한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기억이 좀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농부였어요.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분인데 서당에 다니신 적이 있으셔서 그런지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셨어요. 형제(6남3녀)가 많은데도 중학교(서울사대부중) 때부터 서울로 유학을 보내고, 교육열이 높으셨어요. 제가 대학 시험에 낙방했을 때 2차(후기) 시험을 안 보고 친구들과 강화도 전등사로 놀러 갔다는 얘기를 듣고 오히려 기특하다고 말씀하셨어요. 후기 대학 안 가고 내년에 다시 도전해서 서울대에 가겠다고 하자 "기준을 높이 잡았다"며 대견해 하신 거죠. 그 순간이 일생 동안 잊히지 않아요. 부모의 기대감, 기준의 높이 그런 것의 영향인지 웬만해선 저 스스로 만족을 안 하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이 자제분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예전 어른들이 대개 그렇듯 아버지는 자립심이 강한 분이었어요. 저도 아들하고 딸이 있는데 자립심을 키워주려 했어요. 예를 들어 어려서 놀다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지 않았어요. 애들이 넘어지면 엄마 아빠 쳐다보면서 막 울잖아요, 일으켜 세워줄 때까지. 저는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그냥 뒀어요. 그래서 그런지 애들이 자기 일을 알아서 하더라고요.(※이 전 총장의 아들은 부친의 권유로 해병대를 선택했다.)

"박수 받으며 떠나겠다" 부친과 약속

-41년의 KAIST 생활에서 가장 잊기 어려운 장면은 무엇인가요?
▶이건 좀 자만으로 보일 수도 있겠는데요, 이임식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보셨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떠날 때 존경 받는 교수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했죠? 좀 겸연쩍은 얘기지만, 제 이임식 전에 학교에서 인터넷으로 참석 신청을 받았는데, 순식간에 예약이 끝났어요. 보통 이임식은 조용히 치르잖아요? 그런데 학부생, 대학원생이 꽤 많이 모였어요. 예약을 못해 뒤에 서 있기도 했고요. 원래 행사가 한 시간 예정돼 있었는데 한 시간 반으로 늘어났어요. '아버지에게 한 얘기처럼 내가 제대로 했나 보다. 아버지가 보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이 전 총장은 이 말을 하다 잠시 목이 멨다.)
-교수와 총장으로서 몇% 제대로 하신 것 같습니까?
▶저는 하려고 했던 거 다 한 것 같습니다. 기적적으로요. 흔히 사람들이 '꿈을 꾸면 이뤄진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처음에는 길이 안 보이고 캄캄했던 것들이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적처럼 다 뚫렸어요.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고요. 돈이 없으면 기부하는 분이 나타나고 그랬어요. 자연법칙에서는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회에서 안 되는 것은 인간관계 때문에 안 되고 그러잖아요? 인간관계는 계속 변해요. 꿈을 갖는다는 것은 머릿속에 계속 그 생각을 품고 있는 거죠. 품고 있으면 찬스가 생겨요. 기회의 문이 열릴 때가 있죠. 그때 딱 들어가는 거죠. 머릿속에 꿈이 없는 사람은 기회의 문이 열렸는데도 찾아 들어가질 못해요.

2021년 이광형 당시 KAIST 총장 취임식에 참석한 김정주 넥슨 창업자(왼쪽, 2022년 작고)와 김영달 아이디스홀딩스 대표. 모두 이 전 총장(가운데)의 제자들이다./사진=이광형 제공


-다 이루셨다고 하지만 하나쯤 회한이 남는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딱 하나 마음에 계속 걸리는 게 있어요. KAIST에 의과학대학원을 못 만든 겁니다. 거의 다 될 뻔했는데, '의료 사태'(※윤석열 정부 시절의 전공의 파업)가 터지는 바람에 불발됐어요. 언젠가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또 하나가 있네요. 박사 학위 포기한 제자 두 명이 떠오릅니다. 제가 더 독려하고 개입해서 학위를 받게 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해요. 남에게 섭섭하게 한 것이 내 마음 속에 오래 남나 봅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김정주 회장(※넥슨 창업자, 2022년 작고)입니다. 제가 미국 스탠퍼드대에 1년 가 있을 때 다른 교수로 지도교수를 바꿔야 했어요. 워낙 자유분방해서 새 지도교수와 잘 지내지 못했다고 해요. 원래 다른 교수 밑에 있다가 잘 안 맞아서 제게 온 학생이었어요. 회사 만든다고 잘 나타나지도 않고 회사 일 밤새 하다가 세미나 와서 졸기도 하고 그랬죠. 귀국해서 보니까 자퇴했더라고요. 조금만 버티고 기다렸으면 좋았을 텐데…. 김정주 회장이 어느 인터뷰에서 박사 학위 못 받아서 아쉽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성실한 것도 좋지만 좀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것을 더 중시했어요. 그런 애들은 학점도 안 좋고 다른 데서 치이고 그러잖아요. 야단도 많이 맞고. 저는 격려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을 시간을 주는 편이었어요.

문제 발굴 능력과 리더십 갖춰야 인재

-2021년 3월 총장 취임식에서 학생들에게 공부 좀 덜 하라고 얘기하셨죠?
▶KAIST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AI 시대가 됐기 때문에 이 말이 더 필요해졌어요. 공부해서 머릿속에 막 기억하는 게 덜 중요해졌잖아요. 취임식에서 공부 10% 줄이고 그 시간에 창의적 활동하고 리더십 기르자고 했죠. 동아리 활동, 자발적 프로젝트 그런 것 많이 하도록 했고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굴해서 풀어보겠다며 연구비 달라고 하면 거의 다 들어줬어요.
-우리나라 학생들이 혼자서 궁리하고, 엉뚱한 짓도 해보고 하는 게 부족한가요?
▶부족하죠. 틀에 박힌 수능 공부를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지금 수능은 별로 쓸 데도 없는 것을 외우게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AI 전공자잖아요? 제가 5년 반 전에 취임해서 'Q-카이스트'를 주장했어요. 퀘스천이 제일 중요하다, 질문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질문이 그렇게까지 중요하냐는 시선이 있었죠. 그런데 요즘 AI 시대가 오니 다들 질문 얘기를 하네요.
-그런 생각이 90% 이상의 학생을 수능과 무관하게 뽑는 KAIST 입시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KAIST는 오래 전부터 그래왔어요. 수능 전형을 완전히 없애지 못한 것은 학부모들이 수능 봐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해서 조금 남겨둔 거예요. 자기가 실력 있는 우수한 인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수능 성적을 얘기해요. 그런데 수능이 올바른 평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결국 그릇된 평가에 의지해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상하지 않나요? KAIST는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이고, 활동성 좋은 학생을 원합니다.
-그런 학생을 어떻게 가려내죠?
▶생활기록부 보고, 와서 발표하게 하고, 면접 보죠. 면접에 문제은행이 있어서 자기가 문제를 집습니다. 그 문제를 놓고 설명을 하는 거예요. 암기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죠.
-다른 대학도 그렇게 선발을 해야 할까요?
▶당연하죠. 다른 대학들은 지원자 수가 많아서 그렇게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단과대별로 분리해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지원자가 많은 큰 학교들은 교수도 많잖아요?
-이런 방식의 선발을 확대하셨나요?
▶네, 늘리고 또 늘렸어요. 또 하나 키운 게 있는데요, 사회 배려자 전형이에요. 취임할 때 5% 정도 됐는데 해마다 조금씩 늘려 마지막엔 9%쯤 됐어요. 그 학생들의 성적 변화를 보니까 처음에는 좀 뒤떨어졌는데 졸업할 땐 다른 전형으로 온 학생들과 차이가 없는 거예요. 교육의 성공이죠. 대학이 할 일이 그런 거예요. 어려운 사람들 뽑아 잘 가르쳐서 상위 계층으로 올리는 사다리 역할을 해야죠.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는 이광형 전 KAIST 총장. 2001년에 학교 인근 시장에서 새끼 거위를 구해 교내에 풀어놨다. 현재 10여 마리의 거위가 학생들의 사랑을 받으며 학교 연못가에서 살고 있다./사진=이광형 제공


'아싸' 각고하고 본업 집중하니 '인싸' 돼

-최근 베트남 입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학생이 KAIST에 오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KAIST의 위상이 달라진 건가요?
▶대학원에 외국인 학생이 많이 오는데 최근에 미국과 유럽에서 오는 학생이 부쩍 늘었어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 그 학생도 인터뷰를 보니 지드래곤이 KAIST 초빙교수여서 더 끌렸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지드래곤 초빙교수 위촉 때 제 의도에 그런 부분도 있었어요.
-여러모로 발상이 독특하십니다. 원래 좀 엉뚱하셨습니까?
▶성장 과정에선 그렇지 않았어요. 교수가 된 뒤에 괴짜다, 색다르다 그런 말을 듣기 시작했어요. 교수가 돼서 직장 생활을 하는데 다들 같이 어울리고 놀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같이 어울리려고 노력했는데 어느덧 보니까 '아웃사이더'가 돼 있었어요. 제가 술을 잘 못 해요. 노래도 잘 못 부르고, 재미있는 얘기에도 소질이 없고요. 시간이 좀 지나니 저를 잘 안 불러주더라고요. 그래서 '인싸'(인사이더) 되는 걸 포기했어요. 나는 그냥 내 길로 간다고 마음먹었죠. 학생들과 연구하고, 창업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찾는 인싸가 돼 있더라고요.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세상이 변한 거죠. 아이러니죠.

◇이광형 프로필
1954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사대부중고, 서울대 산업공학과 졸업/ 프랑스 리옹 국립응용과학원(INSA) 박사/ KAIST 전산학과 교수(1985∼2020)/ KAIST 과학영재교육원장(2006∼2012)/ KAIST 총장(2021.3∼2026.7)/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현)/ 2045 과학기술 프론티어 전략위원회 총괄위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