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식 국회의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조정식 국회의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상원' 역할을 하는 현행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국민의힘 등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는 '남발'이라는 표현을 쓰며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야당의 반발에도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개혁입법 처리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 의장은 28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법사위 운영 개선 방향'과 관련한 질의에 "법사위가 말 그대로 상임위의 상임위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저도 공감한다"며 "법사위 개선 방안에 대해 여야 간에 진지하게 논의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최종 검수하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무기로 법안의 형식뿐 아니라 실질적 내용까지 좌우해 왔다. 단원제인 한국 국회에서 법사위가 양원제 국가의 상원처럼 하원이 처리한 법안을 다시 걸러내는 관문 노릇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법안조차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원 구성 협상 때마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 쟁탈전이 벌어졌다.


조 의장은 "각 상임위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 합의 처리한 법안을 법사위에서 시간을 질질 끌거나 내용 자체를 손보는 경우가 가장 불만이 많은 지점"이라며 "그것이 과도하게 진행된다면 기존 상임위에서 했던 노력들과 충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체계·자구 심사는 다른 법률과 충돌하는 게 없는지 조문이 법적으로 제대로 갖춰졌는지 보는 것으로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법사위가 다른 모든 상임위의 상원으로 군림하는 것처럼 운영되면 안 된다"고 했다.


조 의장은 지난해 12월 우원식 전 국회의장에게 전달된 국회개혁자문위원회 결과보고서를 거론하며 ▲법사위를 법제위와 사법위로 분리하는 방안 ▲체계·자구 심사를 소관 상임위나 별도 기관에 맡기는 방안 등 2가지를 개편 방향으로 제시했다.

입법 속도전 예고…"민생·경제 법안까지 무더기 필리버스터, 적절치 않아"

제22대 국회의 필리버스터 실시와 강제종결 횟수. 강제종결되지 않은 4건도 결과는 같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방송문화진흥회법·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필리버스터 도중 회기가 끝나 자동 종결됐다. 3건은 국회법에 따라 다음 회기에 곧바로 표결에 부쳐져 범여권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투표법은 지난 3월 국민의힘이 대구·경북 통합법 처리를 조건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하면서 토론할 의원이 없어 종결됐고 당일 범여권 주도로 통과됐다. 필리버스터가 진행된 32건의 법안이 모두 처리된 셈이다. /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조 의장은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해선 "해야 될 때는 해야겠지만 너무 남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는 32차례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28차례는 민주당 주도로 강제 종결됐다. 나머지 4차례도 회기 종료 3차례, 토론할 의원이 없어 끝난 1차례를 포함해 모두 범여권 주도로 법안이 강행 처리됐다.


조 의장은 "예전에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의견이 엇갈리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웬만하면 필리버스터가 된다"며 "정책 쟁점 사안이 아닌 민생·경제 법안까지 무더기로 필리버스터를 걸어 일괄 보류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어 "소수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발언권을 보장하는 본래 취지는 충분히 살리되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운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입법 속도도 강조했다. 조 의장은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 법안은 그 회기 내에 처리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장 맞다"며 "매월 마지막 주 본회의에서는 법사위까지 처리된 법안을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다만 "치열한 논쟁과 숙의가 필요한 부분들은 미룰 수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필리버스터 종결 요건 완화 등 국회법 개정에 대해서는 "국회법은 여야 운영의 룰인 만큼 합의가 필요하다"면서도 "필요한 법안들이 지연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처리돼야 한다는 점도 충분히 타당하다"고 했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전날 민주당 주도로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개정안에는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을 낼 수 있는 요건을 재적 의원 3분의 1에서 5분의 1로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무제한 토론이 진행되는 도중 본회의장에 남은 의원이 의사정족수에 못 미치면 국회의장이 회의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민주당은 이와 별도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심사 기간을 줄이고 상임위원장을 교체할 수 있는 요건을 새로 만드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 필요성 공감…"보완 대책은 필요"

조정식 국회의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조 의장은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검찰의 수사권 남용에 대한 폐해는 굉장히 오랫동안 제기돼 온 문제"라며 "검찰개혁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기본 방향은 수사·기소 분리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사가 소홀해지거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된다는 걱정이 있는 만큼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며 "국민에게 가장 피해가 덜 가는 방향 등을 감안하면서 법사위 논의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고 처리 방향을 판단하겠다"고 했다.

개헌에 대해서는 내년을 적기로 지목했다. 조 의장은 "내년 2027년은 선거가 없는 해이므로 개헌의 적기"라며 "87년 체제 40년이 되는 상징적 의미와 당위성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는 만큼 개헌 논의를 매듭지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헌이 번번이 무산된 것은 막판에 정략적이거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되고 특히 선거를 앞두고 그랬던 것"이라며 "내년에 진전시키지 못하면 5년 뒤, 10년 뒤로 또 넘어갈지 모른다"고 했다.

조 의장은 "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켜 로드맵을 준비하고 적정 시점에 여야와 함께 개헌특위를 공식 출범시키겠다"며 "내년 중후반 최종 개헌 합의를 목표로 설득과 합의를 제가 직접 나서서 이끌어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에서도 개헌안 자체에 반대한다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슈가 되곤 했다"며 "저는 부정론보다는 낙관론이 낫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