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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은 그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그것을 떠난 후일지도 모른다."
화가 수연이 신간 '흰 비둘기가 사는 곳: 아씨시에서 보낸 3일'에 쓴 문장이다. 부산 영도 출신인 그는 고향을 떠난 뒤에야 바다가 자기 안에 얼마나 큰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여행의 의미, 그림을 그리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모두 이 한 줄에 담겨 있다.
아씨시는 이탈리아 중부, 로마와 피렌체 사이에 자리한 작은 산간 도시다.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나고 생을 마친 곳으로 조토의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는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을 품고 있다. 수연은 거장들의 그림을 직접 보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했고 22일간의 여정 가운데 단 사흘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난 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것은 그림보다 그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기 안에서 피어오른 감정이었다.
책의 시선은 관광지보다 사람에게 오래 머문다. 수녀원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과 식사를 나누고, 노을 아래 처음 만난 연구원과 삶을 이야기하며 그는 "여행이란 다른 울타리의 사람들과 스쳐 가는 것"이라는 자신만의 정의를 내린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들과 서로의 삶을 아무 대가 없이 나누고, 여행에서 받은 친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 수연이 발견한 여행의 본질은 풍경이 아니라 관계였다.
작가는 "이 책엔 아씨시에 대한 단상뿐 아니라 잊고 있던 나의 유년 시절과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고민, 여성의 삶, 이타심에 관한 질문, 여행자들과의 짧은 만남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구체적인 사건이나 문장은 점점 추상화되고 많은 것들이 탈락된다"며 "여행에서 쓴 일기를 통해 오히려 텍스트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림이 감정을 응축하는 예술이라면 이 책은 응축되기 전의 감정과 기억을 들여다보는 창인 셈이다.
수연은 2018년 이후 관계와 연결, 조응을 주제로 한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의 작품에는 서로 기대는 형상과 최소한의 선, 부드러운 색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 언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씨시에서 보낸 사흘 동안의 감각 속에서 이미 조용히 싹트고 있었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로만 읽기에는 아깝다. 한 화가가 자신의 시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의 기록이자, 오늘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오래된 스케치에 가깝다.
좋은 예술은 같은 세계를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 화가는 붓으로 말하고, 작가는 문장으로 말한다. 수연은 두 가지 언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나는 응축된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감정이 머물렀던 시간이다. 이 책은 화가 수연이 붓을 들기 전, 문장으로 먼저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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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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