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가 그린 <루앙의 성당>이나 <수련(睡蓮)> 시리즈는 익히 잘 알려진 명작이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대형 전시회를 가진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역시 투우를 주제로 한 연작을 많이 제작했듯이 수많은 화가들의 다양한 연작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예술에서 연작(聯作, series)이란 하나의 작품을 위해 여러 작가가 연이어 제작하거나 비슷한 유형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창작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왜 연작을 그리는 것일까. 연애편지 쓰듯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아서 일수도 있고, 사회참여의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많은 수의 화가들은 자신의 정신과 열정에 잠재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속적인 연작을 토해내기도 한다.
정관훈, 길, 캔버스위에 유화, 1995~2000년 사이에 제작된 연작이다.

정관훈의 작품 <길> 연작을 보자. 작품 4점은 1990년 중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오랜 시간동안 그려진 작품들이다.
①은 화가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우리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시골길이다. 화가는 어느 순간부터 ②와 같은 시작과 끝이 묘연한 길을 그리기 시작한다. 시작과 끝이 하나라는, 생명의 출발과 종점은 언제나 일치한다는 철학적 명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눈앞에 나타나는 곳은 길이며, 지나가야 할, 넘어야 할 고개이며 과정이다. ③에 이르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길을 간다. 어디선가 시작된 붓질은 끝이 없는 어딘가로 향한다. 멈춰질 수 없다.


삶의 멈춤은 죽음보다 더한 고요에 천착한다. 화가의 심상에서 시작된 철학적 명제의 표현이다. 작품 ④에서는 길을 가는 사람의 발자국이 남는다.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발자국은 뒤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길이 된다. 사람의 행적이 길이 되었는지 길이 사람인지 행적을 알 수 없다.

정관훈의 <길>시리즈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길이 아니라 늘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예술가의 열정과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스스로 고민하는 철학적, 정신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 전까지 화가들의 연작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