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화가들은 왜 연작을 그리는 것일까. 연애편지 쓰듯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아서 일수도 있고, 사회참여의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많은 수의 화가들은 자신의 정신과 열정에 잠재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속적인 연작을 토해내기도 한다.
정관훈의 작품 <길> 연작을 보자. 작품 4점은 1990년 중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오랜 시간동안 그려진 작품들이다.
①은 화가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우리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시골길이다. 화가는 어느 순간부터 ②와 같은 시작과 끝이 묘연한 길을 그리기 시작한다. 시작과 끝이 하나라는, 생명의 출발과 종점은 언제나 일치한다는 철학적 명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눈앞에 나타나는 곳은 길이며, 지나가야 할, 넘어야 할 고개이며 과정이다. ③에 이르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길을 간다. 어디선가 시작된 붓질은 끝이 없는 어딘가로 향한다. 멈춰질 수 없다.
삶의 멈춤은 죽음보다 더한 고요에 천착한다. 화가의 심상에서 시작된 철학적 명제의 표현이다. 작품 ④에서는 길을 가는 사람의 발자국이 남는다.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발자국은 뒤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길이 된다. 사람의 행적이 길이 되었는지 길이 사람인지 행적을 알 수 없다.
정관훈의 <길>시리즈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길이 아니라 늘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예술가의 열정과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스스로 고민하는 철학적, 정신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 전까지 화가들의 연작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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