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미술의 대표주자 중 한사람인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라는 화가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그림 밑에 썼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을 기입함으로써 그림으로 그려진 파이프는 머릿속의 파이프일 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파이프는 아니라는 의미가 확장됐다. 하지만 직접 담배를 피울 수 없는 파이프 이미지라고 해서 파이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그림이라는 것은 어떤 사물을 그리거나 마음이나 정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언어의 일종이다. 따라서 어떤 사물을 그린다고 할 때에는 사물 그 자체는 아니지만 머릿속에서는 사물로 인지된다. 마그리트란 사람이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말하듯이 정창균의 <明鏡止水> 역시 진짜가 아닌 과일 그림을 보고 진짜 과일이라고 주장한다.

정창균, 明鏡止水, 122x61cm, Mixed media&Oil on Canvas, 2010
거울 위에 책이 있고 책 위에 복숭아와 체리가 놓여 있다. 책 위에 놓인 사물을 그린다. 그림은 이미 진짜가 아님에도 화가는 거울에 비친 또 다른 가짜를 그린다. 감상자는 거울에 비친 사물을 보고 책과 과일이 진짜라는 환영에 빠진다. 복숭아와 체리를 그린 것은 그림일 뿐이지 과일 그 자체는 아니다. 그림 과일과 책을 다시한번 복제함으로서 화가 자신이 바라보는 진짜 과일을 감상자가 직접 바라보는 듯한 상황이 연출된다. 아무리 잘 그려낸 복숭아라 할지라도 진짜 과일이 아니듯 맑은 거울에 비친 과일은 가짜의 가짜가 된다. 가상의 세계를 더욱 심화된 가상의 세계로 인도하면서 처음의 가상은 진짜가 되는 역설이다. 거울이 비친 사물에 의해 이미 가짜인 사물은 진짜로 변환된다.


19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물을 그릴 때는 최선을 다해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했다. 플라톤은 미술이란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 세계를 다시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이데아에서 한 단계 더 멀리 떨어져 있고, 그래서 저급한 활동이라고 규정하던 것과 흡사한 2중 부정이다. 2중부정은 긍정이라는, 또는 적의 적은 동지라는 모호한 등식이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