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의 시간은 달콤,
여자라서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금요일 오전 10시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 경마정보잡지 한권씩을 손에 쥔 중년 남성들이 하나 둘씩 역을 빠져나와 경마공원으로 향한다. 그중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중년 여성들도 꽤 섞여 있다. 경마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다.
전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스포츠로서 높은 인기와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경마. 경마의 역사는 인간이 말을 가축화한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올림픽 경기에도 기마경기 기록이 있으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경마는 중세기 영국에서 부터였다. 말을 타고 여우나 토끼를 사냥하면서 서로의 말의 능력을 겨루게 하였고 자신의 기마술을 과시한 것이다.
경마는 스포츠다. 스포츠 각 분야에서 여풍이 거세지만 여전히 여성에게는 높은 벽으로 여겨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 한국 경마에 최초로 여성 조교사가 탄생했다. 한국마사회 이신영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2001년 국내 최초의 여자 기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1999년 기수 생활을 시작했고, 기수 11년 만에 이번에 조교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다.
한국 최초, 동양 최초 여성 조교사 이신영 씨를 만나 '당당한 여성, 당당한 조교사'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남자와 당당히 겨루다
이신영 씨는 1997년 경제위기 상황에 접어든 직후 우연히 경마장에 놀러갔다가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를 펼치는 기수들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에 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기수 모집공고를 보았고, 그 길로 당장 (기본급 월 250만원 정도의) 기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학업의 길(동아대학교 체육학과)도 과감하게 포기하고 도전한 것이다.
기수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로서 그 일을 감당하기란 버겁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경마를 할 때에는 남자 기수들과 여자 기수들의 경기가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를 위한 규칙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라는 심정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고, '여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기죽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소화해냈다.
남자 기수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나에게 그들과 똑같은 조건이 주어진 만큼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여자'로서 쉽게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은 가지고 있다. 여자로서 받는 혜택이나 배려가 결코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여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남자들과 똑같이만 대우해 주면 된다.'라는 혼자만의 다짐을 되새기곤 하는데, 이런 다짐과 강인함이 자신을 이 자리에까지 올려준 것 같다고 한다.
남자보다 당당한 조교사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듯 '독기'를 품은 그녀에게 못오를 산은 없었다. 이번 조교사 면허시험에서 30여명의 쟁쟁한 남자 응시자들을 물리치고 수석으로 합격한 그녀는 말과 함께 평생을 하고 싶어 조교사의 길을 선택했다. 나이가 들면서 기수로서 체력의 한계가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말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인 조교사의 길을 계획했는데, 생각보다 조교사 자격증을 빨리 취득해서 처음에는 조금 경황이 없었다고 한다.
몰려드는 스포트라이트와 주위의 기대에 대한 부담으로 부터 벗어나 '실력 있는 조교사'가 되는 것이 지금으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다짐이라고 말한다.
실력 있는 조교사가 되기 위해서 그녀가 정해놓은 첫번째 목표는 마주의 재산인 말을 잘 보호하고 훈련시켜 사고위험으로부터 벗어나 많은 우승을 손에 거머쥐는 것이다. 그 다음은 직접 훈련시킨 국산 말이 외국 대회에 참여해 우승을 하길 바란다고 한다. 그것이 한국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교사로서 '명예롭게 퇴직하는 것'이 최종목표다. 경마의 특성상 본의 아니게 부정에 관한 일에 휘말리게 돼서 정년까지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개근상의 의미가 단지 출석만 잘했다는 표면적 의미가 전부는 아니듯 '명예롭게 퇴직한다.'의 의미 또한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고 꾸준히, 성실히 일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 꿈을 위해 달리겠다고 다짐했다.
당당한 인생선배
인생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뼈가 열한개나 부러졌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다친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나옴직한 당연한 조언이었다.
혹 기수나 조교사를 꿈꾸는 대학생들이 있다면, '학업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일에 매력을 느끼지 않은 이상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시련은 찾아오게 마련인데 그때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달려있는 것 같다.'며 자신만의 천직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그녀에게서 말(馬)의 위엄있는 기세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기수의 모습이 멋있어서 기수의 길을 택했고, 말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서 조교사의 길을 택한 그녀에게서 '마음만 먹고 노력만 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가장 기본적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여자라는 한계에 부딪혀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녀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의 섬세함과 끈기가 '여성 최초의 기수' '여성 최초의 조교사'로서 가져야 했던 부담을 떨쳐내게 했고, 사명감을 빛내줄 훌륭한 무기가 됨을 입증할 것이다.
아직도 '금녀'혹은 '금남'의 구역으로 여겨지는 직업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성별 잣대에 기죽어서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려는 어리석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그녀의 당당함을 떠올린다면, 그녀에 뒤이어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라는 꿈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미니인터뷰
"경마는 매력있는 스포츠"
△경마가 레저로서 갖는 장점과 단점
-경마 팬으로서 직접 경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과 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이 특별한 것 같다. 그러나 도박성이 있다는 점이 경마에 대한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을 야기하는 것 같아 아쉽다. 건전하게만 즐긴다면 매력 있는 스포츠임에 틀림없다.
△대학생들을 위한 마사회의 프로그램은
-따로 경마와 관련된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고 '마사회 대학생홍보대사'를 선발하고 있다. 또한 '전 국민 말 타기 운동'이 있는데, 승마장을 통째로 빌려서 참가자들이 직접 승마를 해보고 대금은 마사회에서 지불하는 식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주로 시간이 비교적 많은 대학생들과 가족단위의 참가자들이 많다.
*tip*
조교사란
경마용어로서 경마 시행처로 부터 면허를 받아 말을 길들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스포츠팀의 '감독'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한희준 대학생기자 miss.han88@y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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