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으로 찍혀진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라는 작품은 대단히 유명하다. 작가를 안다거나 작품을 이해하는 것보다 삼성에서 소유한 수십억원대의 작품이라는 것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렇게 유명한 <행복한 눈물>은 인쇄매체에 좌우되는 군중심리와 정치적 편향을 꼬집은 작품이다. 잡지의 작은 그림을 확대해서보면 점으로 만들어진 인쇄물일 뿐임을 리히텐슈타인이라는 화가가 직접화법으로 표현했다. 현대인은 인쇄매체의 망점과 인터넷의 픽셀에 의해 감정과 정보의 지배를 받는다. 인터넷의 정보 역시 가볍지만은 않다.
김중식, 이중주의 하모니, 캔버스위에 아크릴릭, 117x91cm, 2010
김중식의 <이중주의 하모니>를 보자. 풍경이나 정물화와 같은 시각적 느낌은 다소 둔화돼 있으나 '왜 이렇게 그렸을까?'하는 의문은 강화된다. 항아리는 오래된 골동으로서 도자기를 의미한다. 누가 보아도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일상에서 이미 사용하지 않는 기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그림위에 물감으로 돗트(dot)를 각인한다. 점이 이미지의 최소 단위이듯 도자기와 여인의 이미지는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최소 단위가 된다.
화가는 여기에서 교묘한 상식을 비꼰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이미지는 오래된 명화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보통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미술에 대해 이해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오래된 도자기와 오래된 명화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현실과 과거의 감성을 느낀다. 반면 보통사람들에게는 오래된 도자기에 그려진 가슴을 드러낸 여성은 도자기에 각인돼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 무시된다. 도자기 자체가 색다른 의미의 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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