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술시장을 돌아보면 씁쓸한 뒷맛만 남는다. 성장은 정체됐고 스캔들은 여전했다. 글로벌 미술시장이 활기를 되찾은 반면 한국시장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미술시장 규모는 전년과 비슷했다. 2007년 호황기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미술품이 로비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뉴스는 반복됐고 미술품을 이용해 재산을 은닉한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 사건도 등장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부실저축은행 대주주로부터 압류한 미술품을 경매에 부치면서 미술계 큰손으로 떠올랐다. 올해부터는 고가 미술품에 대한 양도세가 부과돼 미술시장이 더 침체를 보일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그나마 위로 삼을 것은 미술시장 저변 확대에 대한 기대감 정도다. 글로벌 미술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한국 미술시장도 곁불을 쪼일 것이란 기대감이다. 또 온라인 경매를 통한 저가 미술품 판매가 늘었고 석조미술품, 보이차, 자동차 등 새로운 품목들이 경매시장에 등장해 성공리에 데뷔했다. 경기회복을 기대하는 새해엔 한국 미술시장도 빛을 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해외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운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시리즈. 24억원(수수료 포함시).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
◆ 씁쓸한 정체…경매 기록 900억원 못미쳐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9개 미술품 경매회사의 경매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경매 낙찰 기록은 891억8792만원으로 2011년 905억원에 비해 소폭 감소했다. 한국 미술시장이 가장 호황을 보였던 2007년엔 한해 거래되는 미술품 규모가 1800억원에 달했다. 여전히 절반 수준에서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9개 경매회사가 50여차례 진행한 경매에선 총 1만875점이 출품돼 이중 63.8%인 6940점이 낙찰됐다. 2011년 낙찰률 63.1%에 비하면 소폭 증가한 수준이다.
가장 비싼 값에 팔린 미술품은 '퇴우이선생진적첩'으로 낙찰가 34억원을 기록했다. 퇴우이선생진적첩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 겸재의 그림 등이 곁들여진 16면짜리 서화첩이다. 화첩 내에 실린 계상정거도는 1000원짜리 지폐 뒷면 그림으로 쓰여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퇴우이선생진적첩은 삼성문화재단이 낙찰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우환의 '점으로부터'가 24억원으로 뒤를 이었고 마르크 샤갈의 '부케'(17억원) 박수근의 '아이 업은 소녀와 아이들'(15.2억원) 등이 높은 값에 낙찰됐다.
작가별로 낙찰총액이 가장 높은 작가는 김환기로 출품작 40점이 79억6200만원에 팔렸다. 2011년 1위였던 이우환은 64억9100만원어치가 팔려 2위를 기록했고 박수근의 작품은 51억2100만원어치가 낙찰됐다. 박수근은 호당 가격이 2억750만원을 보여 호당 가격으로는 가장 높았다.
중국 현대미술 작가인 쩡판쯔의 작품이 44억6900만원어치 팔렸고 이대원(26억3600만원), 야요이 쿠사마(26억1400만원), 김창열(21억2100만원) 등도 인기몰이를 한 작가들이다.
뭉크 ‘절규’ (1억1992만달러)
◆ 스캔들 얼룩…'예보콜렉션' 신조어도
지난해 미술시장은 각종 스캔들로 얼룩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미술품 로비사건이 시작이었다. 김찬경 회장은 거액의 불법대출 및 개인비리를 저지르며 미술품을 로비와 불법대출에 활용했다. 김 회장은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미술품을 로비용이나 개인담보로 쓰고 경매업체를 통해 팔기도 했다.
김 회장이 소유한 미술품은 앤디 워홀의 '플라워',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 사이 톰블리의 '볼세나', 박수근의 '두 여인과 아이', 데미안 허스트의 '나비' 등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예보 컬렉션'이란 웃지 못할 신조어도 생겼다. 미래저축은행뿐 아니라 도민저축은행 대주주인 채규철 전 회장이 고가의 미술품과 슈퍼카를 은닉했다가 예보가 이를 적발해 경매에 부쳤다. 예보가 서울옥션 경매를 통해 매각한 미술품은 무려 116점, 매각대금만 52억원 규모였다. 예보가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자 이를 일컬어 '예보 컬렉션'이라 칭한 것이다.
잇단 스캔들에 미술시장의 투명성 강화 목소리가 힘을 얻었고 미술품 양도소득세 부과를 반대하던 화랑계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결국 올해부터 미술품 양도세가 시행돼 6000만원 이상 그림을 매매할 때 발생하는 차액에 대해 20%를 기타소득으로 과세하게 된다. 과세금액 자체보다 신분 노출을 꺼리는 미술 애호가들의 특성상 미술시장이 침체될 것이란 우려도 많다.
◆ 글로벌시장 활황…저변 확대 기대감
한국시장과 대조적으로 글로벌 미술시장은 활황을 보인 한해였다. 글로벌 시장에선 풍성한 기록들이 쏟아졌다.
5월 소더비경매에선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가 1억1992만달러에 팔리며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카타르 왕족인 알마야사 공주는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2억5000만달러에 사들여 미술품 최고거래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소더비, 크리스티 등 글로벌 경매회사들은 최고낙찰률 기록을 경신했고 중국시장의 성장세도 여전했다. 홍콩 외에 베이징도 글로벌 미술시장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한국작가 작품의 해외시장 최고가 기록도 경신됐다. 지난해 11월26일 홍콩에서 진행된 제10회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시리즈가 24억원(수수료포함)에 낙찰됐다. 종전 해외시장 최고가 기록은 박수근의 '나무와 세여인'으로 지난 9월 크리스티경매에서 22억4470만원에 팔린 바 있다.
한편으로는 미술시장 저변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엿볼 수 있었다. 국내 최대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의 국내 경매 기록만 따지면 상당한 성장세를 보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품이 출품되는 온라인 경매도 활황을 보였다.
서울옥션의 지난해 경매 기록은 404억원으로 2011년 323억원 대비 25% 성장했다. 홍콩에서 진행한 경매는 지난해 118억원으로 2011년 123억원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으나 국내에서 진행된 경매실적만 따지면 285억원으로 50%나 성장했다.
서울옥션은 "보이차, 자동차 등 새로운 품목에 대한 다양한 기획경매 시도가 국내 경매실적 성장으로 이어졌다"며 "좋은 작품에 대해선 애호가들의 관심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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