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은 갖고 있는 동안엔 좋은 장식품, 빚을 갚아야 할 순간엔 요긴한 밑천"이라는 말이 있다. 일차적으로 컬렉션은 작가와 예술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서 출발하지만, 예술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유일한 오브제이기에 금전적인 목적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좋은 딜러와 컬렉터를 통한 작품의 유통으로 인해 가치를 인정받게 되거나 작업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동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술품 유통의 역사는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특히나 화가와 컬렉터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는 딜러는 원석과도 같은 화가의 작품을 발굴하고, 작품의 가치를 세상에 피력하며 현재까지의 미술시장을 만들어 낸 간접적인 주체로 존재해왔다.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의 뒤에는 이들을 발굴하고 인내력 있게 후원한 딜러들이 존재했다. 이렇듯 딜러, 화상(畵商)의 역할은 작품을 단순히 사고파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정제되지 않은 작품을 발굴하고 화가에게 금전적인 후원으로 생활의 활로를 마련해주며, 작품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도록 해주고 작가가 타계한 이후에는 작품의 진위를 감정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또한 현재의 딜러는 작품의 가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딜러의 역할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역량에 대한 부피가 커지고 있다.
 
2010년 미국 <아트뉴스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빛나는 미국의 전설적인 딜러 래리 가고시안의 경우 그가 건드리면 작품이 10배가 오른다고 해서 '고고'(Go Go)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이 점만 봐도 유명 딜러가 가진 막대한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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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화상의 안목이 작품 가치 좌우
 
작가의 후원자이자 가치를 발굴하는 존재, 딜러가 탄생했던 시기는 17~18세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미술품 유통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데, 화상의 안목으로 작품의 가치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 까닭이다.
 
17세기에 지금의 뉴욕, 홍콩과 같이 거대 아트마켓이 형성된 곳은 암스테르담이었다. 17세기 유럽에서 무역강국으로 부상한 네덜란드에서 현대적 딜러의 모습이 태동하며 미술품 컬렉터 층도 두터워졌다. 딜러는 작업실을 방문해 그림을 직접 골랐다.
 
화가들은 길드(guild)에 소속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작업을 이어나갔으며, 네덜란드 미술시장은 어느 도시 부럽지 않게 찬란한 발전을 이뤘다. 미술품의 수요가 느는 만큼 창의적이고 다양한 작품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고, 암스테르담은 딜러가 모여드는 미술시장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네덜란드 미술시장의 부흥은 곧 튤립시장 버블붕괴를 전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 시기, 역량 있는 화가들이 대거 이동한 곳은 영국이었다. 18세기 초 영국에는 유능한 딜러들이 탄생했고, 이때 현재까지도 미술시장의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설립됐다.
 
또한 유행처럼 번진 영국 상류층의 이탈리아여행으로 인해 이탈리아 풍경화의 매매가 탄력을 받으며 이탈리아 풍경화가 크게 유행했다. 이탈리아에 지부를 둔 영국 갤러리도 있었을 정도로 런던의 미술품 유통은 활발했다.
 
이후 19세기 파리에서는 현재와 가장 비슷한 딜러의 모습이 등장했다. 딜러의 안목과 역량에 의해 화가의 운명이 뒤바뀔 정도로 딜러의 존재는 몸집을 불리며, 무명화가도 딜러에 의해 스타화가가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큐비즘의 수장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처음 내놓았을 때 화가와 평론가들은 충격적인 화면에 혹평 일색이었지만, 피카소의 스튜디오를 찾은 딜러 다니엘 칸바일러는 피카소의 예술성에 깊이 매료됐다. 피카소가 "칸바일러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듯 칸바일러는 피카소, 브라크 등 입체파 화가들이 당대를 풍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내조했다.
 
또한 19세기 말 가장 중요한 딜러로 기억되는 볼라르는 세잔, 피카소, 보나르, 르누아르, 샤갈 등 수많은 대가들의 화폭에도 남았을 만큼 화가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존재했다. 볼라르는 무명이었던 거장들의 첫번째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고, 판화작품집을 만들어 화가들의 판화예술을 돕기도 했다.
 
화가들을 후원해주고, 실제로 모델이 돼 주기도 하는 등 화가와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던 볼라르의 갤러리는 화가들의 사랑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대를 풍미한 화가의 뒤에는 점차 이들을 세상으로 이끈 딜러의 이름이 동행하게 됐다.
볼라르

◆명작 탄생의 또 다른 창조적 주체 '화상'
 
역사 속 거장의 곁에는 이들의 예술성을 발견하고, 세상과의 소통을 도와준 화상이 존재했다. 그리고 화상은 작품이 당장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해도 묵묵히 이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지지하며 막역한 신뢰를 쌓아 나갔다.
 
때론 시대가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는 작품에 끈기 있게 매달린 화가와 오랜 심적·재정적 후원으로 인내한 화상에게 시대가 감응할 때, 시간을 초월하는 명작은 탄생할 수 있었다.
 
우후죽순처럼 갤러리가 오픈하고 문을 닫으며 시장에서 단기간에 인정받지 못한 작가가 관행처럼 딜러와 멀어지는 요즘, 진정성 있는 화상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작품이 단기간에 시장에서 반응을 얻어낼 수도 있지만, 때론 한 작가의 예술성이 캔버스 밖으로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작품이 성급하게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더라도 예술을 향한 애정을 바탕으로 작가와 딜러가 깊게 교우하며 함께 성장할 때, 때론 더 많은 스토리를 품은 명작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혜안을 가진 화상의 존재는 명작을 탄생시키는 또 다른 창조적 주체인 까닭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