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국내 보험사에 대해 '발생 민원을 줄이라'는 특명을 내렸다. 금감원은 최근 보험사 최고경영자(CEO)회의를 개최하고 CEO가 관련 민원을 줄이는 걸 직접 주관하라고 지시했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은 다가오는 2014회계연도까지 현재 발생하고 있는 민원에서 50%를 감축하도록 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특별지시'가 '악성 민원'이나 '블랙컨슈머'를 양성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최근 현장에서 직접 고객을 만나는 설계사나 보상 관련 담당자들은 고객들이 금감원에 '민원'을 넣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어 난감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어서다.
 
◆민원 많은 보험사 낙인에 억울
 
"약관상으로는 보험사가 보험금을 적게 지급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일단 '암수술'을 받았으니 이에 해당하는 최고 수준의 보험금을 요구합니다. 이런 경우 고객들은 민원을 넣는데,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민원 발생빈도가 높은 대표적인 항목은 '경계성 종양'으로 인한 것이다. 통상 종양은 양성종양과 악성종양으로 나뉘는데, 경계성 종양은 양성과 악성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경계성 종양은 악성종양과 달리 간단한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고 전이될 가능성도 낮다.
 
병원이나 의사들은 경계성 종양이 발생하면 수술해 이를 제거한다. 하지만 보험사는 비교적 가벼운 암이라고 판단해 최소한의 보험금만을 지급하고 있다. 보험에 가입한 계약자는 일단 본인이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악성종양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경계성 종양을 두고 소비자와 보험사의 입장이 엇갈리면 보험금 미지급 민원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소비자가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금감원에 민원을 넣으면 당국은 제3의 공신력이 있는 병원이나 의사에게 판단을 맡긴다. 제3의 병원에서 악성종양으로 판단하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더 지급해야 하며 양성종양에 가깝다고 결정하면 원래대로 낮은 수준의 보험금이 지급된다.

문제는 보험사의 최초 판단처럼 양성종양으로 결정되더라도 민원집계 건수는 그대로 남아 보험사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경계성 종양으로 판정나는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일단 금감원에 민원이 제기되면 보험금을 잘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악성 민원인 퇴치 방법이 없네
 
"자동차 사고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보험사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사고경위와 부상 등 다양한 형태로 사고를 조사해야 하는데 보험금 지급이 늦어진다고 민원이 들어가면 난감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피해자가 원하는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면 민원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손해보험업계에서 보험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분야는 자동차사고 피해와 관련해서다. 특히 보험금 지급 지연에 따른 불만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이 지난 2012년 접수된 금융민원 실적을 조사한 결과 손보사의 경우 보험사기 증가에 따른 보험금 지급심사가 강화되면서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복잡한 심사절차 및 지급 지연 등의 불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이 사고에 상응하는 보험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손보사들은 최대한 정확하고 자세하게 사고를 조사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측에서 보험금 지급이 늦어진다거나 보험금이 적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면 손보사나 보상담당자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감원에 '민원을 넣겠다'며 높은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악성 민원인'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실제 본인이 당한 피해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보험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현장에서 이들을 상대하는 보상 관련업무 종사자들은 지급기준 및 절차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무조건 많은 보험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피해자 앞에서 버티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손보사가 자동차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가 원하는 수준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내·외부 '감사' 때문이다. 감사는 손보사가 자체적으로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것을 조사하기도 하지만 금감원 역시 손보사를 상대로 이와 관련한 검사를 실시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손해사정 부적정' 판정이 나와 많은 보험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되면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간다.
 
국내 손보사 관계자는 "피해자가 많은 보험금을 원해도 금감원으로부터 '손해사정 부적정' 판정을 받을까봐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며 "보험금 관련 민원을 줄이는 손보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고액의 보험금을 요구하는 악성 민원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인 방안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업종에 비해 훨씬 많은 민원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보험사는 '민원 감축'을 요구하는 당국의 지시에 대해 '악성 민원인'이나 '블랙컨슈머'를 양산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보험사가 블랙컨슈머 등임을 입증하면 민원 건수에서 빼주기로 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블랙컨슈머를 보험사가 직접 입증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이와 관련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방법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현장과 업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일단 보험사의 민원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은행과 카드, 증권 등 다른 업종에 비해 보험과 관련한 민원이 유독 많아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금융민원 중 보험부분의 민원은 4만8000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7700건(18.8%) 증가했다. 이는 은행·비은행 부문의 4만3000건, 금융투자부문의 3만5000건과 비교해도 많은 수치다.


금감원은 "모집인 확대 등을 통한 공격적인 외형경쟁으로 인한 상품설명 불충분, 보험요율 부당적용, 보험계약 중도해지 시 보험료 환급 기피 등에 대한 민원이 많았다"며 "저축성보험 및 변액보험의 전화마케팅(TM), 인터넷 판매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한 판매과정에서 불완전 판매가 있었다는 민원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대형보험사의 관계자는 "민원을 줄이기 위한 보험사의 자정노력은 꼭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블랙컨슈머 방지 등 감독당국의 현실적인 대책도 함께 추진돼야 보험업계가 좀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