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똥처럼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작품으로 탄생하는 엽기적인 작품은 더 있다. 영국 작가 마크퀸은 91년 자신의 피를 5리터 정도 모아 자화상을 만들어 내며 충격을 줬다. 작가의 DNA로 응집돼 있어 '작품'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일부'에 가까운 응고된 혈액 덩어리는 영국 미술계 실험정신의 극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국의 젊은 작가 김지훈 역시 자신의 피로 아이콘의 초상을 담아낸 인물화를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으며, 함연주 작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오브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실제 자신의 조직을 재료로 한 작품도 있다. 네덜란드 작가 요하네케 메스터는 자신의 복부 피부를 20cm가량 절개해 봉합하는 대수술을 받으며, 작은 권총 모형에 복부 피부를 씌운 작품을 선보여 관객을 경악케 했다.
충격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재료 자체가 주는 참신함과 유머러스함으로 새로운 조형적 매력을 더하는 작품들도 있다. 박성태 작가는 창문 방충망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알루미늄 스크린을 사용해 입체와 평면의 경계에 있는 신선한 작품을 선보이며 조형적 매력을 전했다. 이는 재료 자체와 작가의 실험정신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듯 물성의 가능성을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대표적인 블루칩 작가로 익숙한 최소영은 청바지를 이어 붙인 산수화로 주목받았다. 불과 24세였던 2004년 홍콩 크리스티경매에서 예상가의 4배를 웃도는 가격에 낙찰되기도 한 청바지 작품은, 작가가 자라난 부산을 따뜻하게 담아낸 풍경으로 사랑받았다.
인세인박 작가는 가정에서 흔히 쓰는 케이블선 피복부분을 잘라내 연결시킨 작품으로 흑백 TV화면 같은 묘한 이미지를 창출해냈으며, 이동재 작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쌀알을 픽셀처럼 응용한 아이콘 작업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커피원두, 식빵, 키보드, 비비탄 등 다양한 일상적인 재료들이 작가의 손에 의해 화면의 픽셀이 돼 이미지를 형상하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일상 가까이에 있는, 혹은 충격적인 재료들은 동시대의 시선과 의미를 담고 다양한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보존성과 안전성은 재료 실험에 검증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까다로운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작품을 한정짓는 틀을 깨고 변화를 거듭하는 재료의 혁명은 급변하는 시대와 함께 다양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 프로필
마이애미·뉴욕·퀼른·워싱턴·런던·도쿄·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00여회의 전시를 가졌으며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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