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날로 커지고 있다. 따라서 대졸자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삼성그룹이 발표한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편안은 메가톤급 파문을 불러왔다.
올해부터 서류전형을 강화하고 새로 '대학총장 추천제'를 도입하면서 신입사원 채용과정에 서류전형을 면제해 주는 인원수를 전국 각 대학에 할당했기 때문이다.
추천 인원이 30명 이상인 학교는 ▲성균관대(115명) ▲서울대·한양대(110명) ▲경북대·고려대·연세대(100명) ▲부산대(90명) ▲인하대(70명) ▲경희대(60명) ▲건국대(50명) ▲부경대·아주대·영남대·중앙대·홍익대(45명) ▲동국대·서강대·전남대(40명) ▲광운대(35명) ▲서울시립대·숭실대·이화여대·전북대·한국외대·한국항공대(30명) 등이었다.
삼성 특화 입시제도가 성행하는 것을 억제하고 인재 수급을 다양화시키는 차원에서 도입하려던 이 제도는 삼성이 대학을 차별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삼성이 각 대학에 추천인원수를 할당하는 건 '대학 위 삼성'의 오만한 태도라는 거부감도 있었다. 아쉬운 점은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민감하게 여길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사전에 충분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삼성은 홈페이지에 "총장 추천 및 서류전형 부활 등 새롭게 도입하려던 대졸 공채방안인 '대학총장 추천제'를 전면 유보한다"고 밝혔다.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며 사과도 했다. 하지만 언론과 사이버 상을 뜨겁게 달궜던 논란 중에는 오해와 진실이 뒤섞여 있었다.
◆'삼성고시' 열기는 어느 정도?
삼성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응시하는 지원자 수는 연간 20만명에 달한다. 일반대학 졸업자 수가 29만8727명('2012년 교육기본통계 조사결과' 교육과학기술부)이므로 대부분의 대졸자와 청년들이 삼성에 취업원서를 낸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삼성에서는 전국의 수험장 임대·관리요원 채용, 시험지 인쇄 및 배송 등에 연간 수백억원을 쏟고 있다. 전국적으로 수백개에 달하는 학원에서는 삼성SSAT 시험반을 운영하면서 삼성 특수를 누리고 있고, 미취업 젊은이들은 토익과 SSAT를 준비하는 데 생활비를 쪼개 지불하고 있다.
삼성에 취업하려는 열기가 해마다 뜨거워지면서 일부러 졸업을 미뤄 취업재수를 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총장추천제가 도마 위에 오른 시점은?
삼성그룹이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것은 지난 1월15일이다. 발표 당시에는 부정적인 반응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취지에 공감하는 긍정적인 시각만 있었다. 열흘가량 지난 후 대학별로 총 5000명의 추천권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삼성 측이 각 대학에 비공개를 요청했던 대학별 인원수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갑작스레 논란이 불거졌다.
추천권을 놓고 지역·대학별로 갈등이 고조됐으며 대학 내에서는 학과별로, 학과 안에서는 학생별로 추천권 다툼이 우려됐다. 교수마다 추천하고 싶은 학생이 서로 다를 수도 있는 일이다. 결국 대학 내에서 모의 SSAT(삼성직무적성검사)를 치르거나 학점 순으로 피추천인을 선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대두됐다. 일부 대학에서 보이콧 선언이 나오는 등 논란이 가중됐다.
지난 1월27일. 포털사이트 다음(Daum) 초기 화면의 '실시간 이슈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 모든 순위를 '삼성 한양대', '삼성 계명대', '삼성 한밭대'와 같이 '삼성 OO대'가 차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포털사이트가 생긴 이래 어떤 초대형 사회적 이슈도 이만큼 검색열풍으로 나타난 적은 없었다.
각 대학이 삼성으로부터 추천 인원을 몇명 할당받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유사 검색어들이 상위에 랭크되는 것은 이해된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형식의 검색어가 모든 순위를 점령하며 오르내린 것은 조작이나 장난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대두됐다. 실제 몇몇 검색어의 경우 클릭해도 유의미한 기사나 블로그 게시물 등이 검색되지 않는다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포털 측은 "현재 삼성으로 가득찬 검색어는 회사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누리꾼들의 순수한 검색결과다. 실시간 검색어가 점령당했어도 인위적으로 검색어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똑같이 보도한 대학별 할당 인원에는 규모 있는 대학이 일부 빠져 있었다. 보도에 나오지 않은 대학은 삼성으로부터 할당받지 못했거나 너무 적게 받아 발표 안 한 것으로 오해한 사람도 있었다.
삼성이 대학별로 할당한 추천 인원수를 최초로 보도한 곳은 대학전문지 <한국대학신문>이었으며(1월24일), 곧바로 여러 종합일간지와 통신사를 비롯해 각종 매체가 이를 인용한 것이다. <한국대학신문>에서는 이후 추가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지만 모든 언론을 통해 널리 확산된 것은 첫 보도에 나온 대학별 인원수였다. 서강대 40명, 홍익대 45명 등은 나중에 확인됐는데 그 이유가 이들 대학이 삼성 측에서 요청한 비공개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신의를 지킨 것이 오히려 대중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격이 됐다.
◆총장추천제가 대학 서열화인가
대학 입시에서 입학생의 수능 점수를 통해 대학 서열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삼성의 총장추천제가 대학 서열화를 고착화시킨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각 대학 추천인원 수는 수능 점수에 의한 서열과는 달랐다.
서울대와 한양대가 똑같이 110명, 경북대·연세대·고려대가 그보다 적은 100명, 동국대·서강대·전남대가 40명씩 추천권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처럼 똑같은 인원수를 할당받은 대학들이 같은 서열에 놓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삼성의 주력사업 분야 특성상 가장 많이 입사하는 분야인 공과대학의 졸업생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추천 비율의 비교는 달라진다(머니투데이 1월26일자).
한국외대는 추천인원수가 30명이지만 공대 졸업생 수 대비 추천비율은 13.33%로 100명을 요청받은 고려대와 연세대의 11.03% 및 9.97%보다 더 높다. 삼성 측은 삼성 입사자 수, 대학별 전체 정원 수, 공대 졸업자 수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추천인 수를 정한 후 학생들을 가장 잘 아는 곳인 대학에 추천을 요청한 것일뿐 '대학 줄 세우기'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기준을 설정하기에 따라 대학별 비교가 달라진다는 점은 '2013년 대학 전체 입학정원을 기준으로 한 추천인원 수 비율'에서 금오공대가 1.86%로 고려대(1.89%)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영남권과 호남권 주요 대학들이 할당받은 인원에서 큰 차이가 났고 경북대의 100명이 전남대 40명의 2.5배에 달한다는 점에서는 지역 차별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 그나마 경북대의 공대 졸업생 수가 전남대보다 많아 졸업생수 대비 추천비율이 각각 7.28%, 4.34%로 격차가 줄어든다.
오래전 지방 국립대학을 각 분야별 특성화대학으로 지정한 적이 있는데 경북대의 경우 전자공학특성화대학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특히 전자공학과 학생 비율이 높은 점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성균관대·한양대·경북대·인하대 등은 삼성과 산학협력을 통해 특성화학과를 개설, 상대적으로 입사자 수가 많다. 영남대의 경우 공대 졸업생 수 대비 추천비율이 전남대에 훨씬 못 미치는 2.97%다.
10명 남짓 할당 받은 지방대학 중에는 해당 대학 출신이 실제 삼성에 입사했던 인원 수보다 더 많은 인원을 할당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런 지방대학은 이 제도의 백지화로 인해 오히려 학생들의 취업 여건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됐다.
◆삼성은 여대와 약자를 홀대했나
여대 중에서는 지명도가 가장 높은 이화여대의 추천인원수가 30명으로 가장 많았고, 숙명여대는 20명이었다. 여대에는 비슷한 지명도를 가진 다른 남녀공학 대학에 비해 적은 인원을 할당, 여대라서 홀대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공대 졸업자수 대비 비율은 이화여대 20.0%, 숙명여대 20.83%로 연세대·고려대보다 오히려 훨씬 더 높다.
삼성이 선호하는 분야의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는 경우 추천 인원이 많아지는 것일 뿐, 지역별로 차별하거나 여대라고 홀대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더욱이 저소득층 인원은 대학에 따라 5∼10명 등 할당 인원을 별도로 명시, 어려운 계층에 대해 배려한 부분도 있었다.
삼성그룹의 '대학총장추천제', '찾아가는 열린 채용'은 무산됐다. 따라서 올해 상반기 채용은 예년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공채에서 누구나 치러야 할 SSAT에 공간지각능력이 새롭게 추가되고 기존 영역에서도 일부 변화가 있으므로 달라지는 부분을 고려해 지원자들이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언어·수리·추리·상식 등 기존 4개 영역에 들어가는 상식 영역에서는 단순히 지식을 묻는 문제보단 인문학 문항, 특히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평가하는 문항의 비중이 많아진다.
오는 4월13일 실시될 상반기 SSAT를 거쳐 약 4000~5000명의 삼성그룹 신입사원이 선발된다. SSAT 합격자는 최종 채용 인원의 2~3배로 선발되고 면접은 5월에 실시된다. 삼성 측에서 일반적으로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에 '대학 졸업 평균 학점 3.0 이상, 지원 직군에 따라 연구·개발직은 오픽 IL급이나 토익스피킹 5급 이상, 경영지원과 영업마케팅직은 오픽 IM급이나·토익스피킹 6급 이상의 영어능력'이 있으며, 중국어 어학 자격 보유자에게는 만점인 500점의 최대 5%(25점)의 가산점이 부여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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