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K9이 2014년형으로 얼굴을 새로이 하고 다시 한번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2년간 판매 부진의 불명예를 이번에 깨끗이 씻어내겠다는 각오다. ‘형제의 차’로 불리는 제네시스가 풀체인지 신형 모델을 선보이고 승승장구 중인 가운데 K9의 행보에도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던 외부 디자인을 세련되게 업그레이드시키고 논란이 됐던 가격을 한번 더 낮추는 등 준비를 단단히 했다.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한 귀로 흘리지 않고 충실히 이행했다는 측면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적재적소 필요한 부분만 손봤다
3일간의 시승을 하면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었던 K9의 자랑거리는 단연 ‘정숙함’이다. 출시 당시부터 최대 장점으로 꼽혔던 정숙함은 2014년형으로 넘어오면서 더욱 진보된 느낌이다.

시승기간 내내 한파주의보가 내려지고 강한 바람이 불었음에도 불구하고 풍절음을 별로 느끼지 못했으며, 고속 주행 시 노면소음이나 엔진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조수석에 동승했던 한 지인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자칫하면 사고 날 가능성이 더 높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K9은 정몽구 회장의 애마로 불릴 만큼 오너드라이버 뿐 아니라 기업 CEO 및 임원들의 업무용 차량으로도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같은 평온함은 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주행성능은 무난했다. 크게 와 닿는 점도 없었지만 부족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파워트레인과 8단 후륜 자동변속기가 변경된 것 없이 적용돼 이전 모델과 확연한 차이를 구분 짓긴 어렵다. V6 3.3 GDi 모델은 최고출력 300마력에 최대토크 35.5㎏·m, V6 3.8 GDi 모델은 최고출력 334마력에 최대토크 40.3kg·m로 기존과 동일하다. 연비 역시 리터당 9.3~9.6㎞로 그대로다.

하지만 추가된 편의사양 덕분에 체감하는 주행의 만족감은 더해졌다. 횡방향 장애물 감지 기능이 추가된 후측방 경보시스템을 비롯해 운전석 위치 설정은 물론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실내조명 밝기 설정까지 저장할 수 있는 운전석 메모리 시트 등이 추가됐다. 전자식 조향시스템(MDPS)을 업그레이드시킨 ‘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스티어링’(R-MDPS)도 기아차 최초로 탑재됐다.

특히 작년 모델부터 적용된 헤드업 디스플레이의 시안성은 여느 수입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간혹 구색 맞추기 식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수준의 것들도 상당한데 K9의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뚜렷한 시안성을 바탕으로 속도계 수준을 넘어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거의 100% 충실하게 표시해준다. 실제 다른 차량에선 잘 쳐다보지 않게 되거나 흐릿해서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K9을 타면서는 줄곧 도움을 받았다.

다만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는 핸들링과 치고나가는 가속력의 부족, 오르막길 및 눈길에서의 주행능력 약화 등은 앞으로도 보완돼야 할 점으로 여겨진다. 제네시스가 신형으로 탈바꿈하면서 4륜구동 시스템을 새롭게 탑재한 것처럼 K9 역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품격은 높이고, 가격은 낮추고
디자인적인 측면을 살펴보자면 2014년형 K9의 특징은 고급스러움과 세련미의 극대화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우선 차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라디에이터그릴에 미묘한 변화를 줬다. BMW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이유에서일까. 가운데를 가를 듯 깊숙하게 들어갔던 부분이 위로 올라오고 좌우 폭도 넓어졌다. 각진 형태에서 타원형에 가깝게 바뀌면서 전체적인 중후함이 더해진 느낌이다.

또한 LED 포지션 램프의 길이 연장과 방향지시등의 위치 조정을 통해 전면부를 더욱 넓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았으며, 측면부는 펜더 가니시의 크롬 테두리 두께와 비율을 조정해 날렵한 느낌을 강조했다. 후면부는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의 LED 방향 지시등 렌즈 커버를 화이트 컬러로 변경함으로써 모던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내부는 마감재에 공을 들인 모습이다. 블랙하이그로시 재질로 마감 처리한 센터페시아와 크롬라인과 우드그레인으로 감싼 앞뒷문 상단 등 인테리어 주요부위에서 재질의 고급화를 위해 애쓴 흔적이 눈에 띄었다. 파노라마 선루프는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착해진 가격도 주목할 만하다. K9은 출시 당시 높은 가격 책정으로 뭇매를 맞은 바 있는데 지난해와 올해 연이은 가격 인하를 통해 이를 어느 정도 만회한 것으로 보인다.

3.3 프레스티지 모델의 경우 2013년형보다 176만원 내린 4990만원으로 결정됐다. 한 등급 아래인 제네시스 수준까지 가격을 내린 것이다. 주력 트림인 3.3 이그제큐티브(5590만원)는 126만원 인상됐지만 옵션 가격 254만원의 9.2인치 내비게이션과 LED 포그램프, 뒷좌석 암레스트 USB 충전단자 등이 적용된 점을 감안하면 인상폭이 최소화됐다는 게 기아차의 설명이다. 최고급형인 3.8 RVIP 모델은 7830만원으로 책정돼 동급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BMW 7시리즈나 에쿠스 등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다.

자칫 어중간한 가격 정책으로 스스로의 이미지 포지셔닝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요구를 생각하면 바람직한 변화로 여겨진다. 내실 있는 변화로 고급화를 꾀하는 한편 가격인하로 한층 경쟁력을 강화한 2014년 K9이 그간 무너진 기아차의 자존심을 세워줄 지 기대가 모아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