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단심가>다. 아마도 우리 국민 중 상당 수가 외울 수 있는 시조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선 정몽주를 만나고, 학자의 벗이 되었던 등(登) 구경을 간다.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

◆뜻 밖의 곳에서 만나는 정몽주선생
선생은 충신의 대명사이다. 스러져 가는 고려에 끝까지 충성하고자 했던 포은 정몽주 선생은 조선이 건국되던 해였던 1392년에 선죽교에서 피살됐다. 왕래가 자유롭지 않은 북한땅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빌자면, 아직도 돌다리에는 그 핏자국이 붉게 남아있다고 한다. 사실 핏자국보다 더 확실히 남은 것은 시조 <단심가>다.

나라는 망해 가고, 목숨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의 상황에서 이방원은 <하여가>로 설득과 회유의 마음을 전했고, 그에 대해 정몽주는 <단심가>로 본인의 의지를 답했다. 요즘 같아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런 시문학이 나왔다니 …. 두말할 것도 없이 그분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대표적인 유산이다.

포은 정몽주는 개성 땅, 선죽교에서 순절했다. 그런데 묘는 용인에 있다. 그렇다면 이곳이 그의 고향이거나 어떤 연고가 있나. 아니다. 이것은 마치 울산바위가 강원도 땅에 있는 것처럼 뜬금없다. 그런데 명당은 명당이다. 도대체 묘 자리를 누가 봐줬길래 풍광이 시원한 전형적인 배산임수터를 구했을까. 그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14년이 지나 하늘의 특혜를 받았다. 1392년 순절 후 풍덕면에 모셨던 정몽주 선생을 1406년에 고향인 경상도로 이장하기로 한다. 면례 행렬이 시작됐고, 개성으로부터 먼 길을 가던 이들이 용인에 잠시 멈췄다. 그런데 돌풍이 일고 명정이 하늘높이 올라 갔다가 이곳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터가 좋았고, 이를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 행렬은 부인 경주 이씨와 함께 이곳에 포은 선생을 모셨다.



정몽주 묘역과 등잔박물관
포은 정몽주 선생 묘

◆주인을 말해주는 묘역
정몽주 묘역은 왕릉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규모를 가졌다. 입구에는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지은 신도비각이 있고 커다란 홍살문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그리고 오래된 집이 있는데 이곳은 바깥쪽으로부터 경모사, 모현당, 영모재다. 경모사에는 관리자가 실제 거주하며 여행자들에게 좋은 정보와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모현당은 각종 제례행사나 종중회의를 하던 곳이다. 이곳에 포은 선생이 직접 쓴 행서 편판이 걸려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쪽으로 영모재가 있다. 영모재는 제향을 위해 지은 재실로 우암 송시열의 편액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쉽게도 이곳의 내부를 볼 수가 없다. 건물이 노후돼 중건을 계획 중이라, 바깥에서 전체적인 모습만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바깥에서만 봐도 솟을대문이며 처마와 서까래의 자연스러운 곡선이 참 아름답다. 전체의 아름다움으로 충분한데 뭐 굳이 방과 마루를 들어가서 봐야 할까 싶기도 하다.

드디어 묘역이 시작된다. 그렇지, 이게 없을 리가 없다. 바로 백로가와 단심가의 시비가 시작을 알린다. 단심가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고, 백로가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로 시작하는, 포은 선생의 어머니가 지은 시이다. 역시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런 분이 나온 것이다. 절개도 그렇고 문학의 완성도도 참으로 뛰어나다.

이제 묘를 향해 오른다. 오른쪽으로 저헌 이석형 선생의 묘가 있고, 왼쪽이 정몽주 선생의 묘이다. 그리고 오른쪽에 작은 연못이 있어 수련이 활짝 폈다. 못에는 물오리도 떠다니고 잉어와 금붕어가 뻐끔거린다. 포은 선생의 묘까지는 돌판이 길을 안내하는데 비록 그늘 없는 묘역이지만 바람이 불면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딱 좋겠다. 작은 언덕을 올라 땀을 식힌다. 명당은 명당인지라 겨우 몇 미터 올라왔을 뿐인데 돌아본 풍경이 시원하다.

저헌 이석형 선생은 누구인가. 바로 정몽주선생의 증손녀 사위이고 이곳에 증손녀와 함께 합장됐다. 재미있는 건, 그가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평행이론의 비교선상에 놓일 정도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태종과 세조인데, 증조부인 정몽주는 태종으로부터 죽임을 당했고 증손녀 사위인 이석형은 세조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역사라는 게 참 오묘하다. 이러니 어떤 인생도, 역사도 단정할 수 없는 것이겠지.


한국등잔박물관

◆‘학자의 밤 친구’ 등잔박물관
정몽주도 이석형도 학자다. 이들은 밤이나 낮이나 글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언제나 불그릇이 함께 했을 것이다. 마침 정몽주 묘역은 ‘한국등잔박물관’과 지척에 있다. 슬슬 걷다 보면 수원화성을 본떠 만들었다는 둥글고 당차 보이는 작은 박물관에 도착한다.

1층은 생활 속에 발견하는 등잔, 2층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로 나누어 시대별 등잔을 볼 수 있다. 3층은 세미나실이자 특별전시실이고, 지하는 ‘상우당’이라 하여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행사가 열린다.

등잔은 크고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를 알고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한국에 기름과 초를 사용한 조명이 1876년(고종 13년) 이후 들어왔으니, 그 나머지가 등불의 역사인 셈이다. 그런데 조선초기 이전에는 등이 제를 지내거나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보통 사람이 불을 조명으로 쓴 역사는 500년 조금 넘는 셈이다. ‘등잔을 받쳐드는 등가, 등잔을 걸쳐놓는 등경, 기름을 담아 불을 켜는 등잔의 구조를 가진 등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형태’라는 것이 이곳 관장의 이야기다. 이것은 좌식 온돌문화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일본은 다다미방에 화로를 사용했고, 중국은 일찍부터 입식생활을 했기 때문에 바닥에 놓는 등이 필요 없었다는 거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 땅의 사람들은 등잔을 사용하면서 용도에 따라 시대에 따라 아름답게 발전시켰고 다양한 형태로 남았다. 들고 다니는 제등, 걸어놓는 괘등, 실내 바닥에 놓는 좌등, 초를 꽂는 촛대 등 쓰임새도 다양하고 청동, 백자, 나무, 종이 등 소재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평소에 관심 없이 지나쳤던 등기구 300여점을 구경하면서 저녁에는 책 한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실에서 나오면 야외전시실이다. 등잔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관장님이 하나하나 모은 고미술작품과 옛 물건들을 100여점 볼 수 있다. 석탑과 석등, 맷돌, 솟대, 물확, 연자매, 작은 연못과 분수 등 볼 것 많은 정원과 한쪽에는 별도의 실내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경기 지방의 농기구들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옆에는 설립자이자 관장님의 사택이 있는데 박물관을 향해 의자 하나를 둔 것이 눈에 띈다. 시시때때로 저 의자에 앉아 평생을 몰입한 이 박물관을 바라볼 것이다. 물론 사립박물관은 국립박물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이다. 그렇지만 전시물에 쏟은 애정의 깊이를 생각하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일 것이다. 이처럼 작은 박물관들이 곳곳에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문화를 소중히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또 다른 여행 길에서 만날 누군가의 열정을 기대하게 된다.

● 여행 정보

☞ 용인 포은정몽주선생묘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판교IC고가차도 진입 후 서현로 - 오포터널 진입후 태재로 - 능원교차로에서 ‘수원, 수지, 레이크사이드 CC’ 방면으로 - 포은대로 - 능평교차로에서 ‘분당, 능평리, 능원리’ 방면으로 우측방향 - 능원로 - 능평교차로에서 좌회전 - 능원로 - 능평교차로에서 ‘광주’ 방면으로 좌회전 - 포은대로

☞ 대중교통
분당선 전철, 오리역 하차 - 4번 출구에서 수원↔광주행 60번 버스 승차 - 능원리묘소 입구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정몽주 선생묘: 검색어 ‘포은정몽주선생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한국등잔박물관: 검색어 ‘등잔박물관’ /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258-9

< 주요 정보 >

한국등잔박물관
http://www.deungjan.or.kr / 031-334-0797
관람시간: (4~9월) 오전 10시~오후 5시 30분 / (10~3월) 오전 10시~오후 5시
관람료: 대인 5000원 / 중·고·대학생, 노인·어린이 3000원
체험 프로그램: 화촉만들기, 등잔만들기, 제등만들기 각 1만2000원 / 좌등만들기 3만원
박물관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포은 정몽주, 등불아래 시를 쓰다’
- 기간 2014년 3~11월
- 대상: 전국 초등학생
- 장소: 한국등잔박물관
- 문의: 031-334-9797

포은 정몽주
http://www.poeun.com / 031-332-3422

< 음식 >
본가장수촌: 한우설렁탕, 닭백숙, 장어 등 보양식을 먹기 좋은 곳이다. 이와 함께 깔끔한 메밀전병과 막국수도 인기메뉴다.
누룽지닭백숙 3만5000원 / 능이누룽지닭백숙 5만원 / 장어정식 2만5000원
예약전화 031-337-2888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264번지

쏠뱅: 정몽주선생 묘 앞에 자리잡은 유기농 베이커리이다. 천연발효종과 유정란을 사용하여 모든 빵을 정석으로 만든다. 근처에서 브런치를 즐기러 오는 단골들이 많다.
031-336-0035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206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