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입화장품 마니아인 황선영씨(가명·29)도 마찬가지. 황씨는 이제 화장품을 살 때 브랜드와 디자인이 아닌 성분부터 확인한다. 파라벤이나 페녹시에탄올 등 유해 물질이 들어 있는지 성분 표시부터 체크하는 것. 황씨는 “화장품의 주요 성분인 파라벤이 내분비계 교란 장애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접한 뒤로는 제품을 구입할 때마다 성분을 꼼꼼히 살펴본다”고 말했다. 황씨는 운영 중인 뷰티 블로그를 통해 수입화장품 성분과 관련된 내용을 포스팅하고,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는 “명품이나 유기농 화장품이라는 말만 믿고 제품을 샀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입화장품 안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뷰티업계를 중심으로 ‘(방부제) 無 첨가’ 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국내 주요 브랜드들이 유해 성분을 없앤 뒤 ‘안전성’을 어필하는 반면, 대부분 수입 화장품 브랜드들은 파라벤, 페녹시에탄올 등 다수의 방부제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수입화장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 샤넬, 디올, 시슬리 등 브랜드들은 이달 들어 평균 3%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에센스, 크림 등 제품 종류별로 비싼 것은 30만~50만원에 육박한다.
◆말로만 ‘식물성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고가의 수입화장품을 구입한 뒤 성분을 보고 실망한 소비자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식물성 화장품’을 콘셉트로 내걸고 있는 A사. 이 회사의 고가라인 화장품 중 하나는 트리에탄올아민, 페녹시에탄올을 비롯 메틸파라벤, 프로필파라벤, 부틸파라벤 등 파라벤 5종이 포함돼 있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A사의 에센스 로션에도 미네랄 오일과 파라벤 5종이 모두 들어있다.
트리에탄올아민은 세정제 원료로 포름알데히드 계열과 만나면 발암물질을 유발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미네랄오일은 석유에서 추출한 보습성분으로 존슨즈베이비오일로 잘 알려진 성분이다. 피부 트러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피부호흡과 수분흡수를 차단해 자가 면역성을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몇년 전 출간된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에서 가장 피해야 할 20가지 성분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파라벤 5총사'는 화장품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합성 방부제로 가공식품, 위생용품 등에까지 널리 쓰이지만 호르몬계를 교란시켜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화장품업체들이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성분 중 하나다. 페녹시에탄올은 파라벤의 대체 방부제로 쓰이지만 역시 체내에 흡수돼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이다.
A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한 고객은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괜찮았지만 제품 성분을 보고 실망한건 사실”이라며 “알러지나 아토피에 좋은 식물성 원료를 꽤 많이 넣었으면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급 수입 화장품에 대한 인식이나 높은 가격대와는 달리 화학 성분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A사 측은 (화학 성분이) 실제 제품에 매우 소량 들어 있으며 배합한도를 지키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파라벤 함유 기준은 0.4%로 규제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파라벤 성분 등 보존제가 여러개 들어간다고 해서 함량까지도 많은 것은 아니다”며 “제품의 효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전제를 사용하여 제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유럽의 보존제 안정성 기준은 국내보다 훨씬 까다로운 편”이라며 “유럽에서 몇십년 동안 사용하면서 안전하다고 판단한 방부성분과 제품 유해성을 낮추는 배합으로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식물·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화장품에서 유해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비자 기만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아무리 소량이라도 수십년에 걸쳐 쓸 경우 인체에 축척될 수 있고 향후 인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뷰티업계 한 관계자는 “A사 제품의 파라벤 성분은 같은 업계에서 볼 때도 과한 부분이 있다”며 “성분만 놓고 보면 저가 화장품이랑 다를 바 없는데, 수십만원대 가격은 터무니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양날의 칼’ 같은 존재
이는 비단 A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수입브랜드 제품에도 유해 성분이 포함돼 있다. B사의 파운데이션에는 메틸파라벤, 디메치콘 등이 포함됐고 C사의 선크림에는 파라벤, 벤조페논 등이 첨가돼 있다.
D사에도 디메치콘, 페녹시에탄올, 파라벤 등이 일부 제품에 함유됐다. ‘수분크림’으로 유명한 E사의 경우 지난해 립밤 제품에 프로필파라벤, 부틸파라벤 2종류가 들어가 있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화장품 제조업체는 제품 수명의 연장을 위해 파라벤 사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항변한다. 특히 수입해서 넘어오는 화장품의 경우 장기간 온도변화를 겪기 때문에 방부처리는 필수적이라는 것.
파라벤이 없는 화장품은 미생물이 쉽게 증식돼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 파라벤을 쓰자니 인체의 유해성 때문에 불안하고, 안쓰자니 제품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라벤 남용의 피해에 대한 연구 결과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사용 제한을 권고하는 각국의 지적이 있는 이상, 업체의 파라벤 줄이기 또는 없애기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화장품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유통 중인 화장품은 전 성분 표시제를 의무화 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파라벤, 또는 다른 종류의 방부제가 들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며 “당국도 화장품 유해 성분에 대한 기초 데이터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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