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문학적인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지난 2006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징역 8년6개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년 뒤인 2008년 1월 특별사면되며 자유의 몸이 됐다.
새해 벽두부터 재계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연말 정치권에서 불거진 ‘경제인 사면’ 문제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어서다.
시동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걸었다. 그는 지난해 9월 "기업인이라고 해서 엄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은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안된다"며 가석방 논란의 불을 지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까지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경기부양 차원에서라도 기업인들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검토해야 한다”며 이를 거들었다.
시민단체와 야당의원들은 즉각 "기업인들에 대한 특혜"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유력한 당권 주자인 박지원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기업인이라고 해서 역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밝히자 정치권의 경제인 사면논란은 더욱 들끓었다. 당혹해진 청와대는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라며 선을 그었고 가석방 권한을 갖고 있는 법무부는 “원칙대로 하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연말 정국이 기업인 가석방 얘기로 소용돌이친 형국이다. 정치권의 이같은 분위기는 새해 들어 설과 3·1절을 전후해 가석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계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기업인 가석방 조치가 내려진다면 과연 수혜자는 누가 될까.' 재계의 눈귀가 자연스레 이 질문에 쏠리게 됐다.
◆ '700일 수감' 최태원 회장에 쏠린 눈
현재 구속 수감 중인 기업인 가운데 가석방 대상자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 거론된다. 현행법상 가석방 대상은 무기징역 선고시 20년 이상, 유기징역은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복역해야 한다. 따라서 가석방이 현실화 될 경우 ‘1순위’로는 최태원 회장이 유력하다.
지난해 1월 최 회장은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해 12월31일 기준 700일을 수감, 전체 형기(2017년 1월 말까지)의 3분의 1(486일)을 초과해 가석방 요건을 충족했다. 오는 30일이면 형기의 절반까지 채우게 된다.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지난 2013년 9월 2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받아 수감 중인데 이미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채웠다.
재계가 기업인 가석방 흐름에 최 회장을 주목하는 것은 역대 재벌총수 가운데 최장기간 복역한 데다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한 것과 관련이 있다. 최 회장은 700일이 넘는 기간동안 병보석 신청없이 성실히 수감생활에 임했다. 면회 시간을 통해 회사 얘기를 전해듣는가 하면, 옥중 사회적 기업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펴내기도 했다. 여기에 둘째 딸인 민정씨가 재벌가 딸 가운데 처음으로 군 장교로 입대한 것도 여러모로 최 회장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
반면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가석방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수감 기간이 짧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가석방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낮다. 이재현 회장은 수술 등으로 수차례 구속집행이 중단돼 ‘3분의 1 이상’ 수감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호진 전 회장과 그의 모친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 역시 병보석과 형집행정지로 가석방 요건에 못미친다.
결국 최태원-최재원 형제와 구본상 전 부회장 정도가 가석방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마저도 현실화될 지는 미지수다. 정부 입장에서 최근 '땅콩회항' 사건으로 인해 재벌총수 일가에 대한 국민여론이 썩 좋지않는 점을 감안해 쉽게 가석방을 결정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 경제살리기 명분? 총수부재에도 시가총액 늘어
역대 기업인의 사면·가석방 문제는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재벌총수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인이 복귀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실제 역대 정권은 수감 중인 재벌총수들을 경제살리기나 투자활성화 등의 명목을 내세워 줄곧 ‘훈방’ 처리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주범으로 꼽혔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을 사면했다. 노무현 정부도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IOC 위원으로 평창올림픽 유치에 힘쓸 수 있었던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특사로 풀어줬다.
이명박 정부 역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이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사면의 수혜를 입었다.
다만 박근혜 정부 들어선 기업인 사면은커녕 가석방조차 없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5900여명의 특별사면을 단행했지만 이 가운데 기업인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또 614명의 가석방 명단에도 기업인을 제외했다.
정부의 기업인 사면 또는 가석방은 특혜 시비와 경제살리기 이슈 사이에서 적절성 논란에 휘말리곤 한다. 시민단체와 야권에서는 총수부재 상황에서 오히려 시가총액이 늘어난 기업들이 많다며 가석방 의견의 '경제살리기' 명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SK그룹과 CJ그룹은 지난해 주가 흐름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10대 그룹 중 주가가 올랐다. 나머지 8개 기업의 주가는 모두 하락했다. 대신증권이 지난 2013년 연말부터 지난해 12월2일까지 10대 그룹 상장사들의 시가총액 변동을 집계한 결과 CJ그룹 시총이 21.49% 증가해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2위를 기록한 SK그룹의 시총도 13.05% 늘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재벌 그룹의 경우 전문경영인 등 세분화된 체제가 잘 갖춰져 있어 총수 부재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 만큼 크지 않다"면서 "다만 대규모 인수합병(M&A) 등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업부문의 경우 장기적으로 오너리스크가 기업성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인 가석방, 국민 60% "반대"
기업인 가석방 논란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결론은 '반감'이었다.
지난해 12월30일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가석방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반대(66.3%)가 찬성(29.1%) 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앞서 같은달 24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가석방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8.1%로, ‘찬성한다’는 의견(22.0%)보다 3배 정도 많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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