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다. 그리고 또 한번 서럽다. 그게 뮤지컬 '아리랑'을 본 후 기자가 느낀 감정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뮤지컬 제작사 신시컴퍼니가 야심 차게 기획한 뮤지컬 '아리랑'은 조정래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무대에 선보였다.
방대한 소설 '아리랑'을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 1920년대 말까지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살아냈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담아 뮤지컬 버전으로 보여준 것이다.
을사늑약(조약)을 목전에 둔 대한제국 말기, 전북 김제 죽산면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모를 잃은 차득보와 감골댁의 딸 방수국의 애절한 사랑, 방수국을 짝사랑하는 양치성, 의식 있는 양반 송수익과 그를 흠모하는 차득보의 여동생 차옥비, 감골댁과 그녀의 아들 방영근까지 주요인물 7명의 인생을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민초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나는 득보 사랑허제!"
"나도 수국이 사랑허제!"
"우리 마음 서로 알제!"
"좋은 호시절 오~것제!"
극 초반 첫 번째 넘버 '진달래와 사랑'의 첫 부분이다. 득보와 수국의 인물 관계를 보여준다. 이 넘버는 그 외에도 양치성의 심리상태와 송수익과 차옥비의 심리상태, 단 돈 20원에 아들 방영근을 멀리 이국땅 하와이 노동자로 팔아버린 감골댁까지 모든 인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극의 방향을 설정해준다.
이 후 을사늑약(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빼앗긴 후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서럽고 한스러운 민초들이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해나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역사가 증명하듯... 아쉽지만 작품 속에서 '좋은 호시절'은 오지 않는다. 끝까지 민초들의 설움만 남는다.
<사진=뮤지컬 '아리랑' 주요 장면>
작품에서 배우들의 열연은 극의 몰입을 한층 더 도와준다.송수익을 연기한'서범석' 배우는 중후한 멋을 뽐내며, 극 전체를 이끌어간다. 특히 그가 부르는 넘버에서는 절절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로 극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같은 역을 맡은'안재욱' 배우는 풍부한 연기력을 바탕으로민초들의 설움을폭 넓게 표현하며 중심을 잡는다.
송수익을 흠모하는 여인 차옥비는 국립창극단 배우 '이소연'이 연기했다. 오랜 기간 연기를 해온 소리꾼 이소연은 안정된 연기와 함께 절절한 소리로 설움과 한을 표현해 낸다. 그녀가 극 중 넘버를 '소리'로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민초들의 설움이 한 순간 폭발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수국을 연기한 두 배우도 인상적이다.'임혜영' 배우는 연약한 수국으로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캐릭터로 비춰진 반면'윤공주' 배우는 좀 더 강인한 수국으로 죽을 수 없는 수국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두 배우가 연기한 수국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국을 짝사랑하는 양치성은'카이' 배우와 '김우형' 배우가 맡아 힘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두 배우는 비교가 무색할 만큼 폭넓은 연기와 노래를 선보인다. 맡은 배역은 악역이지만 송수익과 함께 극 전체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수국을 사랑하는 득보는'이창희' 배우와 '김병희' 배우가 맛깔스런 연기를 보여준다. '이창희'는 절제된 설움을 표현했다면 '김병희'는 터질 듯 터질 듯 터트리지 못하는 설움을 보여준다.
감골댁을 연기한'김성녀' 배우는 처절한 어머니를 연기한다. 속이 타들어가듯 숫검댕이가 되어버린 그 시절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다.
지역적 배경을 살린 전라도 사투리와 시대적 배경을 살린 일본군의 일본말도 관객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일제강점기 민초들이 처한 상황을 현실감 있게 제대로 표현하려 한 점도 인상적이다.
기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프리뷰 기간에 한 번 관람했으며,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를, 마지막으로 지난 주말 한 번 더 관람했다. 뮤지컬 '아리랑'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주요 배역의 성격과 배역을 맡고 있는 배우들이 보여주려 한 느낌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만큼 감동도 크게 다가왔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귀에 맴도는 넘버는 여럿 있었다. '진달래와 사랑', '어떻게든' 등의 넘버는 공연을 마친 후 집에 갈 때까지 뇌리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크게 다가오는 넘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은 넘버가 끝난 후 박수 칠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배경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LEC스크린도 다소 극의 몰입을 방해했다. 무대 구성을 단조롭게 한 반면 전체적인 극의 배경을 반투명스크린인 LEC스크린으로 활용해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 했지만, 배우들이 연기한 상황과 LEC스크린의 배경이 감정적으로 일치하지 못해 오히려 몰입감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처럼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뮤지컬 '아리랑'은 베테랑 연기자들의 깊이 있는 연기력과 넘버, 그리고 시대적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힘이 합쳐져 묵직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호시절'을 그리며 민초들의 설움과 한을 보여준 뮤지컬 '아리랑'은 7월 16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돼 9월 5일까지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