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이 잇단 악재에 곤혹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의 경영공백과 사퇴설, 직원들의 성희롱 논란까지 삼중고에 시달리는 것.
금융업계는 지방은행의 악재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져 아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때 외국계은행을 뛰어넘고 시중은행 자리까지 넘보며 승승장구하던 지방은행이 몸살을 앓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영공백·비자금 조성의혹
논란의 중심에 선 지방은행은 자산규모 1·2위를 달리는 BNK금융지주와 DGB금융지주다. BNK금융지주는 부산은행, DGB금융지주는 대구은행을 각각 계열사로 뒀다.
BNK금융지주는 성세환 전 회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되면서 넉달째 경영공백 상태다. 서둘러 차기 회장 인선작업에 나서야 하지만 이사회 위원 간 의견이 엇갈려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회장 후보자는 박재경 BNK금융 회장 직무대행과 김지완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정민주 BNK금융경영연구소 대표(전 BNK금융 부사장) 등 3명이다.
BNK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8월17일 3명의 후보자 면접을 거쳐 차기 회장을 선임할 계획이었지만 과반 찬성이 이뤄지지 않아 같은달 21일로 연기됐다. 하지만 이날 역시 합의점을 찾지 못해 9월8일로 재차 미뤄졌다.
6명의 임추위원 중 3명은 박재경 회장 직무대행을, 나머지 3명은 김지완 전 부회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경 대행 지지자들은 지역과 은행을 아는 내부인사가 차기 회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지완 전 부회장 지지자는 조직쇄신과 적폐청산을 위해 외부인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도 의견이 엇갈렸다. 부산시민단체협의회와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는 김 전 부회장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내부인사가 선임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낙하산 인사가 새 회장으로 임명되면 임추위를 고발하고 국회 청문회를 촉구하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산참여연대는 “내부문제를 비판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 부산 엘시티 대출과 관련 없는 사람이 차기 회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보다는 외부인사가 적합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방은행 2위인 DGB금융은 ‘비자금 조성의혹’ 사건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논란은 지난해 말 박인규 DGB금융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대구은행으로부터 ‘상품권깡’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투서가 금융감독원에 접수되면서 불거졌다.
당시 금융당국은 투서를 받고 박 회장과 대구은행을 상대로 정기검사에 돌입했으나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최근 비자금 조성의혹이 경찰에 다시 접수되면서 논란의 불씨가 다시 커졌다. 경찰은 투서를 바탕으로 대구은행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선 익명의 투서가 박 회장을 퇴진시키려는 목적이 깔린 것으로 본다. 박 회장은 경북 경산 출신으로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졸업하고 1979년부터 대구은행에서 근무했다. 2012년 퇴직했다가 2014년 대구은행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020년까지다.
회장 임기가 한참 남았는데도 DBG금융에 내분이 일어난 이유는 박근혜정부와 연관이 있다. 그는 박근혜정부 시절 친박 실세로 통하던 자유한국당 중진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전임인 하춘수 전 DGB금융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지난해 4.13 총선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그와 가까운 박 회장이 친박 인사로 더욱 굳어진 분위기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박 회장도 퇴진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커진 셈이다.
이런 와중에 실적도 지지부진하다. DGB금융의 당기순이익은 그가 취임하던 해인 2014년 2438억원에서 2015년 3083억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3019억원으로 국내 금융지주사 가운데 유일하게 감소했다.
박 회장은 이와 관련 “사태수습 후 거취를 결정하겠다”며 “업무에 충실히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 조사결과가 나온 이후 사퇴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형지주 사태, 반면교사 삼아야
지방은행이 안고 있는 CEO 리스크는 국내 대형지주사와 묘하게 닮았다. KB금융과 신한금융도 CEO 내분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바 있다. KB금융은 전산교체를 둘러싼 갈등으로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동반 사퇴했고 신한금융은 지주 회장 및 은행장이 지주 사장과 반목하다 이른바 ‘신한사태’를 겪었다.
공통점은 또 있다. KB금융과 신한금융 역시 국내 금융지주사 1, 2위를 다툰다. 또 CEO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까지 승승장구했다.
BNK금융과 DGB금융도 CEO 리스크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외형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지방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 지방에서 수도권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덩치를 키웠다. 시중은행은 당시 건설사와 조선·해운사 사태로 대기업 부실위험이 높아 수익이 고꾸라졌지만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지방은행은 이를 기회로 수도권 고객까지 유입했다.
BNK금융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옛 경남은행을 인수해 은행순위 5위에 올랐고 DBG금융은 우리아비바생명(DGB생명), LS자산운용(DGB자산운용) 등을 잇달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줄타기 내부문화’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은 CEO 사태 이후 심각한 줄서기 문화에 시달려야 했다. 이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원과제로 남았다. 지방은행 역시 정치논리와 줄타기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이든 시중이든 국내 금융지주사가 잇따라 CEO 내홍을 겪는 것은 금융제도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부 줄타기 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를 해결하려면 결국 임직원 모두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인사가 차기 CEO 자리에 올라야 한다”며 “지방은행은 KB와 신한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만약 CEO 리스크를 서둘러 매듭짓지 못하면 후유증은 더 길게 갈 것”이라며 “이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규제를 강화해서라도 재발방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3호(2017년 8월30일~9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