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새해 들어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국내 철강업계에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비관세장벽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견제를 시작할 게 예견돼서다. 당장 오는 16일이 결과발표기한인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를 비롯, 다양한 수입규제 판결이 줄줄이 예고됐다. 전세계 철강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는 2016년 기준 345건이나 된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여러 규제가 본격화됐음에도 고비를 무사히 넘긴 덕에 하반기 철강수출 전망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깔딱고개’를 넘으면서 회복세가 급격히 둔화됐다.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제품가격인상, 강화된 무역규제 등 국내외 악재를 극복하는 데 힘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생산 완급조절 가능할까
정부는 올 들어 각국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 지난해 12월21일 ‘철강 수입규제 민관합동 워크숍’을 열고 업계관계자, 전문가들과 함께 철강분야 수입규제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철강업계에 대미 수출물량을 조절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고 관련업계가 발칵 뒤집히자 지난해 12월26일 산업부가 부랴부랴 “수출물량을 조절하도록 지시하거나 요청한 적 없다”고 사태 수습에 나서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당시 불거진 논란처럼 실제로 수출물량의 완급조절이 가능하긴 한 걸까. 이에 철강업계는 “현재 업계 구조상 불가능하다”면서 “현실적으로 중국산 철강의 수입규제를 하는 편이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 근거로 철강의 총 생산량을 들었다. 연간 국내 철강 총 생산량은 5000만톤 수준인 반면 중국은 10억톤에 달한다. 양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만큼 불필요하게 공급을 늘린 중국 업체가 생산량을 줄이는 게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이 지난 11월 발표한 전망자료에 따르면 올 국내 철강재 내수는 지난해보다 1.0% 증가한 5678만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수입규제에 따라 0.6% 증가한 3255만톤을 예상했으며 생산은 판재류를 중심으로 2%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중국 철강업체들이 과잉생산을 이어가며 제품단가를 크게 떨어뜨렸고 중국제 저가제품이 미국 철강업계 생태계를 위협하면서 미국정부가 대응을 시작한 것”이라며 “국내업체가 여러 국가의 타깃이 된 건 그만큼 국내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수요산업’의 컨디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내외 철강수요업종의 업황에 따라 실적이 좌우된다는 것. 즉 무역장벽을 우려해 수출량을 조절하는 것보다 실제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미국이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세아제강의 강관은 높아진 장벽에도 오히려 수출량과 매출이 늘었다. 지난해 미국의 유정사업 호황으로 공사가 늘면서 유정강관 수출이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품가격이 인상돼 전체 실적이 함께 개선됐다. 이 같은 이유로 철강업계에서는 단순히 규제가 조금 심해졌다고 물량을 줄이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철강분야의 국제 공급과잉은 약 7.4억톤이다. 공급이 줄었음에도 당분간 철강수요가 정체돼 구조적인 공급과잉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했다. 문제를 공감한 중국정부는 최근 2년 새 1억톤 이상 생산량을 줄였고 올해는 아직 생산량 감축목표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감산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2018년 주요 산업별 경기 전망과 시사점’보고서에 따르면 철강업계는 글로벌 과잉공급이 일부 해소되면서 수출경기의 회복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연구원은 건설·조선업계 등 내수 부진이 이어져 회복세가 미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황별 시나리오 대응 필요
세계 각국 정부가 자주 쓰는 수입규제 방법인 ‘반덤핑’(anti-dumping)은 WTO(세계무역기구)가 허용하는 규제다. 덤핑으로 인한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서다. 국내 판매가격보다 해외 판매가격이 낮으면 덤핑으로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액이 덤핑마진이다. 따라서 제품가격을 낮추는 데 수출국 정부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가 덤핑 판정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을 할인해주는 것도 포함된다.
산업부는 각국의 무역규제에 대해 철강업계, 외교부와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지만 상대국이 문제를 제기한 다음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에 그칠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철강업체들은 날로 높아질 무역장벽에 스스로 대비, 통상대응조직을 이미 확대 개편했다. 장기화·다양화되는 이슈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 나아가 경쟁이 덜 치열한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회계법인 ITC는 미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리한 가용정보’(AFA), ‘특별한 시장상황’(PMS) 등의 조사기법을 활용한 높은 수준의 반덤핑·상계관세 판정을 내리는 만큼 전문가들이 조사과정상 협조를 통해 불리한 판정을 받을 여지를 최소화하고 정부는 WTO제소 등을 통해 업계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지나친 규제를 내세우지 못할 걸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이 수입제품 가격규제를 시작하면 미국 내 판매제품의 가격이 오르고 결국 그 피해는 또 다른 미국업체가 떠안을 거란 이유에서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미국정부가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려고 여러 장벽을 세웠지만 오히려 피해를 보는 미국업체가 생긴다”면서 “최종재의 가격이 오르면 결국 소비자들의 지출이 늘고 물가인상으로 이어져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수입량 제한 쿼터제 등 강력한 규제를 앞세우지는 않을 거란 전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현재는 구체적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최근의 동향을 고려해 상황별 시나리오를 세워 철저히 대비할 예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1호(2018년 1월3~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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