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주요 고객인 저축은행의 ‘관계형 금융’이 위태롭다. 핀테크(금융과 기술 결합) 발달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장기간 고객과 대면하며 관계망을 쌓는 서민금융이 위축되고 있어서다.

은행영업에서 핀테크를 활용하면 직접 발로 뛰는 인력이나 시간 등 중간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때문에 핀테크 발달이 관계형 금융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역 서민금융의 위축으로 금융 사각지대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관계형 금융? 숫자보다 ‘사람’

고객의 대출한도 및 금리 등을 산정할 때 금융사는 개인신용등급, 담보물 감정가, 재무제표 등 정량화된 수치를 사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보가 부족한 이들이 있다. 재무제표가 없는데 작성된 장부의 공신력까지 낮은 중소영세사업자 등 체계적 정보 산출이 어려운 고객군이다.

관계형 금융은 이런 고객에게 적용하는 대출 심사 방식이다. 정량적 수치는 물론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환능력 등 정성적 정보를 활용해 대출자격을 평가한다. 해당 고객에 대한 주변의 평판을 참고해 상환 의지를 판단하는 식이다. 현금거래가 주로 발생해 정확한 매출 파악이 어렵더라도 지속적인 고객과의 접촉을 통해 대출한도를 상향조정할 수도 있다.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관계형 금융을 위해선 고객과 오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잘못된 평가로 자칫 차주의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 저축은행은 관계형 금융 전담직원을 두기도 했다. 전담직원은 고객과 수시로 연락하며 고객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관계형 금융은 당장의 수익을 보장하진 않는다. 고객이 내방하는 창구 영업 방식이 아니라 직원이 현장을 직접 뛰어야 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역의 중소 저축은행들이 관계형금융에 집중했던 건 정성적 한도를 생성해 맞춤형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충성고객을 확보, 미래 수익원을 발굴하겠다는 전략에서였다. 핵심 고객이 또 다른 고객을 소개하는 식으로 미래의 여신고객을 잡겠다는 의도다.

◆금융 사각지대 확대 우려

그러나 저축은행은 최근 관계형 금융을 축소하는 중이다. 금융당국이 2014년 9월 관계형 금융 활성화 방안을 내놓으며 우수사례로 꼽았던 A저축은행의 관계자는 “현재 당행에선 관계형 금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우수사례로 꼽혔던 B저축은행 측은 “관계형 금융으로 거래하는 대출 건은 사실상 없다”고 전했다.

다만 C저축은행은 관계형 금융 전용상품을 취급 중이며 이 상품이 전체 대출액 가운데 10%가량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C저축은행 관계자는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비중은 100%에 가까웠지만 관계형 금융은 계속 줄어드는 중이며 앞으로 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계형 금융이 설자리를 잃는 건 핀테크 발달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서울지역을 기반으로 영업하는 한 중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관계형 금융은 고객과 ‘대면’이 필수다. 그러나 핀테크가 발달함에 따라 대면하지 않고도 수익 확보가 가능해졌다”며 “비용을 고려하면 핀테크를 활용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관계형 금융 취급을 위해 전체 83명의 임직원 중 50명가량을 현장 직원으로 둔 경상도 지역의 한 중소형 저축은행 관계자도 “발품을 팔아 영업하는 데엔 시간이 많이 든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간과 비용 절감이 가능해졌다”며 “당행은 대출모집인을 따로 쓰지 않을 만큼 관계형 금융에 집중하고 있지만 핀테크 발달로 관계형 금융은 더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핀테크 발달과 별개로 대출자의 정량적 정보가 많아진 만큼 관계형 금융 축소 추세가 환경상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금융환경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관계형 금융 필요성이 적은 나라다. 즉 정량적 정보가 굉장히 체계적으로 구축됐다는 의미”라며 “기계 도움을 받아 신용평가모델이 고도화된다면 이를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관계형 금융 축소의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문제는 금융소외계층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류 연구위원은 “관계형 금융 고객은 금융소외 계층일 가능성이 높은데 정량적 정보가 부족한 이들은 금융시장에서 더욱 소외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도 “관계형 금융으로조차 대출거래가 힘들다면 금융 사각지대의 서민은 금융 접근성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2014년 9월 저축은행의 본연의 역할인 관계형 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관련 방안을 내놨지만 지금까지 답보 상태다. 접근성 제고를 위해 기존 허가제였던 점포 설치를 신고제로 전환하고 여신전문 출장소 설치 시 증자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지만 개선된 사항은 없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관계형 금융을 활성화하려 해도 시장 환경상 어려울 뿐더러 각종 규제로 막혀 있어 더더욱 외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2호(2018년 3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