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를 밝히기 3주 전까지만 해도 회사의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등 직무수행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던 권 회장이 왜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내려오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지난 3월 말 있었던 포스코 창립 50주년 간담회에서 그는 CEO 교체설과 관련해 “포스코가 자의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며 “정도에 입각해서 경영을 해나가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포스코 측은 “정치권의 압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어 보인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기존 수장을 내치고 입맛에 맞는 새 수장을 앉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정치권과 재계에선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새다.
물론 최근 일부 언론이 제기한 볼리비아 리튬사업, 에콰도르기업 인수합병, 송도사옥 매각 등 여러 의혹에 따른 부담 때문에 권 회장이 스스로 자리를 떠나겠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주인 없는 회사인 포스코의 유상부·이구택·정준양 전 회장은 정권교체와 함께 물러났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정권교체기마다 CEO가 바뀌는 사실상 ‘공기업’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주인 없는 민간기업에 정부가 개입하면 필연적으로 정경유착을 낳는다. 능력 있는 인물을 CEO에 임명하는 게 어려워지고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해 추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기업을 죽이는 일이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이 국가 기간산업에 속하는 만큼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수준이어선 안된다. 주인 없는 기업에 공정한 인사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은 수년간 제기됐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다. 포스코의 경우 6단계에 걸친 회장 선임절차가 있지만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 주인 없는 회사는 포스코뿐만이 아니다. 포스코와 같이 CEO 잔혹사를 겪어온 KT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KT&G도 마찬가지다. 국책은행이 최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 등이 조속히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원칙은 꼭 필요하다.
일각에선 이 회사들에게 주인을 찾아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역시 정답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너리스크 역시 기업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기업의 대주주가 누구건 국민과 주주의 감시에서 벗어날 경우 기업의 가치가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국민과 주주에게 기업을 더욱 투명하게 공개토록 하고 주주의 경영참여를 늘리는 것만이 주인 없는 회사가 살아남을 길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7호(2018년 4월25일~5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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