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업계가 시름에 빠졌다. 관세법 폐지로 세금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 이를 타계하기 위해 항공기부품과 부수장비 무관세 거래를 위한 협정(TCA)에 가입하길 원하고 있지만 정부부처가 반대하는 상태다. 현재 일본, 미국, EU등 항공 선진국을 중심으로 총 32개국이 TCA에 가입돼 있다.
국내 항공사들이 TCA 가입을 원하는 이유는 관세법 개정으로 인한 경쟁력 악화 때문이다.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연 20%씩 감면 혜택이 축소되며 2023년부터 관세 면제 혜택이 완전히 사라진다. 올해까지는 관세법 제89조에 따라 부품 관세 전액이 감면되고 특례규정으로 감면액의 20%에 대한 농특세만 부과된다.
◆대안 없는 법개정에 항공업계 ‘휘청’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국적항공사 5곳의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관세 감면 규모는 2654억원이다. 농특세 20% 납부액을 차감한 실질 감면액은 2123억원이다. 그러나 관세 감면 제도 변화에 따라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예상되는 관세액은 약 4029억원으로 기존 대비 약 2배가 늘어난다.
국내 항공사들은 수천억원의 세금부담이 우려되는 상황에 한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국내 항공시장의 맏형 격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FSC)를 중심으로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이 함께 한국항공협회와 손을 잡았다.
"TCA 가입이 막대한 세금부담을 줄이고 타국 항공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궁극적인 대안"이라는 것이 항공사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항공사들은 TCA 가입이 제한된다면 차선책으로 관세법 제89조 폐지에 대한 유예기간을 늘려달라고 주장했다.
항공사들의 소통 창구인 한국항공협회는 정부가 국적항공사들이 외항사들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본 틀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희형 한국항공협회 과장은 “(관세 감면 제도 폐지 시) 항공사에서 당장 그만큼의 비용부담이 늘어나니까 항공권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비수익 노선들의 축소가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항공사들은 모든 노선에서 수익을 내면서 운항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 내륙 노선 같은 경우는 일정 부분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국민의 교통 편익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우리 정부가 최근 강화하려는 항공정비(MRO)사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장은 “다른 나라에서는 MRO사업을 시행할 때 관세부담이 없다”며 “하지만 우리는 세금부담을 지고 수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MRO 단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항공업계의 주장에도 정부부처는 꼼짝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TCA 가입 관련 국회 공청회가 진행됐다. 당시 산업부 측은 항공 제조업분야 등의 의견도 수렴해 심도 있는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기재부와 국토부 등과 함께 2차례 정도 추가적인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부처 가운데 TCA 찬성 입장은 국토교통부뿐이다. 국토부 측은 국적사의 경쟁력 확보와 외항사와의 공정한 경쟁기회 제공을 위해 TCA 가입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반대로 산업통상자원부는 항공제조업분야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TCA 협정상의 여러 조항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획재정부는 TCA 가입과 관련해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차선책으로 제기된 관세 감면 연장과 관련해서는 일부 민간기업에 특혜를 제공하는 정책이라고 반대했다.
이 과장은 “산업부는 항공제조업분야에 악영향을 미치고 TCA 협정상에 있는 여러 조항 때문에 당장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며 “기재부는 FTA를 맺어 감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세 감면 폐지로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타격이 가장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장은 “특히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저비용항공사들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제주항공을 예로 들면 항공기를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상승한 정비비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항공업계가 TCA 가입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미동도 없는 상태다. 운이 좋아 정부가 당장 TCA 가입을 허용해도 실제 가입 완료까지 최소 2년이 걸린다. 당장 내년부터 감면 제도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항공사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이 과장은 “TCA는 국제 협정이라 정부 내에서도 경제적 손익을 분석해야 하고 공청회와 국회 비준까지 받아야 한다”며 “모든 절차를 거치면 최소 2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협회 측에서는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타 국가와의 다자간 협상을 보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며 “다른 나라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기 때문인데 그나마 TCA는 기존에 있던 협정에 신규가입하는 형태라 절차가 단축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칼피아 논란에 숨죽인 항공사
설상가상으로 최근 국내 항공업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제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분위기다. 대한항공의 갑질 논란을 비롯해 총수 일가에 대한 폭로, 비리전이 성행하고 있어 국내 항공업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 특히 진에어 불법등기이사 등재, 대한항공 출신 항공관계자들(칼피아)의 증가, 특혜 등 각종 논란으로 항공업계 전반에 부정적 이미지가 박혔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 이슈로 업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며 “관세 감면 제도 폐지는 국내 항공시장의 경쟁력, 더 나아가서는 안전운항 등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부처가 나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6호(2018년 6월27일~7월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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