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만명이 증발했다. ‘지저 세계’(땅속 세상) 사람의 소행이었다. 그들은 평화를 대가로 인류에 땅을 팔 것을 요구했다. 땅을 판 자만이 그날 빵을 얻을 수 있었다. 인류는 ‘회색인간’, ‘살아있는 송장’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돌을 던졌다. 노래할 힘으로 땅이나 파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는 피가 나게 맞아도 사람들이 돌 던질 힘이 없어질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그에게 빵을 건넸다. 이후 그림 그리는 사람이 생겨났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에게 빵을 가져다줬다. (후략)

김동식 작가의 소설 <회색인간> 중반까지의 줄거리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 속 막장에 갇힌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짓는 이들에게 점차 빵을 건넨다. 땅도 파지 않고 쓸모없어 보이는 행위만 거듭하는 이들 앞에서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소설은 묻는다. 문화란 무엇인가. 인류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

◆재밌다, 그런데 가볍지 않다


김 작가는 올 초 혜성처럼 등장한 소설가다. 지난해 12월27일 첫 소설집 <회색인간>을 출간한 이후 최근 다섯번째 소설집을 내놨다. 1권은 8쇄, 2~3권은 5쇄까지 출간됐다. SBS 보도본부의 지식나눔 사회공헌 프로젝트인 ‘SBS D 포럼’(SDF)에 초청돼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에도 연재된다.

그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로 등단한 작가가 아니다. 2016년 5월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출판된 그의 소설집은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에 놓여있다.

김 작가 소설의 인기요인은 단연 재미다. 인조인간, 좀비 등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SF형식이다. 결말엔 항상 반전이 있다. 어렵지도 않다. 유려한 문장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쉽다. 분량도 짧다. 책 크기도 작은데 소설 한편이 10장이 안된다.


김동식 작가. /사진=서대웅 기자

그런데 소설에 담긴 메시지가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성인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진지하게 읽는 건 김 작가가 던지는 질문 때문이다. <회색인간>이 그렇다. 또 신 앞에서 소원을 비는 피노키오를 다룬 <피노키오의 꿈>은 어떤가. “건강한 소나무가 되고 싶어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꿈은 인간의 기준일 뿐이다. 이처럼 그는 통념을 뒤집는다.
이런 시각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이야기 소재는 어디서 얻는 걸까. 김 작가는 “세상 모든 게 이야깃거리다. 서로 합치거나 뒤틀면 된다”고 말한다. 싱거운 설명이지만 그의 과거에서 김 작가가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을 엿볼 수 있다.

부산 출생인 김 작가는 중학교 1학년 때 자퇴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학교 다니기가 싫었단다.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대구로 가 PC방에서 3년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 60만원가량 받았다. 돈을 좀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2006년 상경했다. 벨트, 자크, 단추 등을 만드는 주물공장에 들어갔다. 첫 월급으로 130만원을 받았다. 마지막 월급으로 185만원을 받은 2016년까지 500도가 넘는 불 앞에서 일했다.

“그간 기사에선 제가 엄청 힘든 일을 해온 노동자처럼 나왔어요. 힘들게 일하면서 글 썼겠구나…. 사실 아니에요. 편했어요. 공장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요. 처음엔 위험하지만 익숙해지면 쉬운 일이었죠. 몸은 안 힘든데 지루했어요. 퇴근 후에도 심심하니 온갖 잡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일하는 동안 소설의 소재를 많이 얻었다고 했다. ‘자신을 희생해 인류를 구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이 영화의 결말이 이랬다면 어땠을까’ 식의 엉뚱한 생각으로 지루한 일상을 버텼다는 것이다.

◆인터넷 댓글로 글쓰는 자신감 생겨

그렇다면 김 작가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평생 읽은 책이 10권이 안 된다는 그에게 소설은 무엇일까. 그는 “나에겐 친구가 없다. 자퇴한 게 가장 후회스러운 건 친구를 만들지 못한 점”이라고 말했다.

커뮤니티 공포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는 건 몇 안되는 취미 중 하나였다. 댓글을 달았는데 공감을 많이 받으며 자신감이 생겼다. 참관인이 아닌 글쓴이로 그 무대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사흘에 한편씩 글을 올리자는 목표를 세웠다. 3일이 지나면 해당 글이 뒤로 밀려 댓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글 쓰면서 좋았던 점이 있어요. 보통 자정에 글을 올리면 잠자리가 뿌듯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지 않게 됐어요. 댓글 보는 재미로요. 그게 어떤 기분이냐면 공장에서 제가 만든 단추가 달린 옷을 대형마트에서 보거나 TV 속 유명 연예인이 입은 걸 보면 굉장히 행복하거든요. 그러한 행복이 지속되는 느낌이랄까요.”

2016년 12월 그는 일을 그만뒀다. 자신에게 부여한 첫 휴식이었다. 여행을 가자고 마음먹었는데 글 쓰는 게 더 재밌었단다. 글이 엉망이어도 다른 사람들이 댓글로 여러 의견을 내놨다. 그것들을 반영하기 시작하며 글은 점점 공감을 받기 시작했다.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씨는 김 작가를 “독자가 만들어낸 작가”라고 했다. 김 작가에게 소설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인 셈이다.

인생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김 작가는 “없다”고 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단다. 그는 “3일에 한편씩 글을 쓰자는 게 유일한 목표였는데 이를 지키니 주위에서 도와줬다. 당분간은 이렇게 글 쓰고 싶다”면서도 “언제까지 소설을 쓸지는 모르겠다. 다만 재밌는 걸 계속 찾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그에게 있어 ‘재미’란 거창한 게 아니다. 친구도, 별다른 취미도 없는 그는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듯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9호(2018년 7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