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사진=클립아트

모든 경제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경제활동의 최종목표는 소비를 통해 얻는 만족이다.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생산이 필요하다. 사람이 먹고 살며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게 바로 일자리다. 일자리는 경제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얻는 수단이지만 가치있는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자리가 있어야 스스로 긍지와 자존심을 지키고 삶의 보람을 느끼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일자리의 중요성은 공자도 충분히 인식했다. “사람이 다 성장해 어른이 되면 그 능력에 따라 쓰임이 있으며 남자는 각자 맞는 직업이 있고 여자는 결혼해 가정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가 추구했던 대동사회의 모습이다(<예기> 예운편.)
공자가 남녀에 차등을 둔 것은 수렵에서 농경으로 넘어가던 당시 상황에 맞춰 설명한 것이다. 주희의 세례를 자청했던 조선 성리학자들이 남존여비를 내세워 차별한 것은 공자의 본뜻을 왜곡한 것이다. 이는 성리학이 지배이데올로기로 고착화되기 전인 조선 전기까지, 특히 고려에서 남녀차별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천하 경영의 과제는 생산


“먹는 것과 병사를 충분히 해야 백성이 이를(정치를) 믿는다(<논어> 안연편).

자공이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가 답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자공이 한발 나아가 “부득이하게 이들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묻자 “병사”라고 말했다.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것보다 먼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의 과제임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고 왕은 백성을 하늘로 떠받든다’는 위민정치 사상이다.

순자는 한 술 더 뜬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순자> 왕제편). 임금이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고 국방도 튼튼히 하면 잘 떠받들지만 먹고사는 것과 국방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끌어내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대학>에서는 ‘절약’을 중시한다. “재화를 만들어 내는 데 큰 길이 있으니 만들어 내는 사람이 많고 먹는 사람이 적으며 일 하는 사람이 빠르고 쓰는 사람이 느리면 재화는 항상 풍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1960년대 ‘저축이 미덕’이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하지만 절약은 단기적인 해결책일 뿐 중장기적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용>에서는 보다 적극적 대응을 주문한다. 애공(哀公)이 정치를 묻자 공자가 답한 내용으로 유명한 <구경대법>에서다.

공자는 천하를 경영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9가지 핵심과제 가운데 7번째로 생산문제를 거론한다. 여러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재화가 풍족해 진다며 ‘래백공’(來百工)을 강조한 것이다. “래백공이란 이로운 것을 통하게 해서 필요한 일을 바꾸고 농사와 다른 생업을 서로 돕게 한다. 또 공인들이 물건을 많이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 날마다 살피고 달마다 시험을 봐서 그 성과에 따라 보상에 차등을 주어야 한다(<중용> 20장)”

◆21세기 새 경제학은 ‘내생적 성장’

공자의 유교는 ‘경제문제를 소홀히 했다’는 세간의 잘못된 평가와 달리 무려 2200년 전에 인사고과를 실시하고 그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했다. 이런 경제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중국·조선·베트남 등)은 1842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영국에 패하기 전까지 2000여년 동안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서양을 압도하는 발전을 지속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윌리엄 노드하우스 미국 예일대 교수 공동수상)를 선정했다. ‘내생적 성장이론’을 개척한 로머(1955년생)는 일찍부터 노벨경제학상을 예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 생산의 3요소로 설명되던 토지·노동·자본 대신 사람(People)·발상(Idea)·재료(Things)를 제시하면서 1990년대부터 ‘지식경제학’이란 새 영역을 열었기 때문이다.

로머 성장론에서 가장 획기적인 것은 경제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리적 요소가 아니라 지식(축적)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인구가 많다(즉 저가 노동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경제가 성장,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인재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그 독창적 발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료를 만들어내는 게 경쟁력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로머의 이런 아이디어는 슘페터의 ‘창조적 혁신’과 케인즈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과도 연결된다. 올 들어 전 세계 대중음악계를 뒤흔드는 방탄소년단(BTS)도 그 근원을 파고들면 이런 성장모델과 관련됐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제일과제 = 일자리

가장 오래된 경전 가운데 하나인 <시경>에서는 “군자는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위풍> ‘伐檀(벌단)’)고 강조했다. 주역에서도 “마시고 먹는 것이 즐겁고 즐겁다는 것은 공연히 배 부르려 하지 않음”이라고 거듭 밝혔다.

맹자는 “선비가 밭도 갈지 않고 물건도 만들지 않으면서 먹는 것은 어째서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군자가 등용된다면 편안하고 부유하며 우러르고 영화로우며, 자제들이 그를 따른다면 효도하고 우애하며 충성하고 믿음이 있으니 공밥을 먹지 않음이 이보다 더 크겠느냐”(<맹자> 진심상편)고 밝혔다.

경제는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한다’는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줄임말이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일자리 창출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자와 로머(케인즈·슘페터)의 패치워크(짜깁기, 접붙이기)가 시급하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 채 정치·경제 전문가인 체하는 가짜들이 없어져야 한국경제가 산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과 지위로 무위도식하는 ‘가짜 군자’는 국민이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당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민이 피땀 흘려 번 밥을 공짜로 먹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4호(2018년 10월31일~11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