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억울하게 떠나신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제목에서부터 절절함이 느껴지는 이 글의 청원인은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46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돌아가셨음에도 교통사고 가해자는 반성조차 안하는 상황이라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청원에 따르면 지난 9월21일 밤 11시50분쯤 경기 성남 내곡터널을 나오던 승용차가 4m 깊이의 배수로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바로 그 차에 청원인의 가족이 타고 있었다. 이 사고의 피의자인 최모씨(61)가 운전하던 과속차량이 뒤에서 충돌하는 바람에 청원인의 가족이 타고 있던 차가 배수로로 추락했다는 것. 이로 인해 청원인의 오빠는 척수골절 판정을 받아 몇년간 준비한 아이돌 데뷔무대에 서지 못했고 아버지는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폐와 뇌가 망가져서 의식불명으로 46일을 버티다 사망하고 말았다.
◆누구를 위한 교특법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최씨는 사과도 하지 않고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행세한다며 청원인은 울분을 터뜨렸다.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니 100% 최씨의 과실이었고 음주도 안한 상태로 터널에서 100㎞ 이상 과속을 했다는 것이다. 청원인은 명백한 살인이지만 가해자 최씨는 구속되지 않고 합의만 종용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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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의 원인으로 가해자의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특법)이 지목된다. 교특법으로 인한 솜방망이 처벌이 운전자의 안전불감증을 낳고 도덕적 해이 등 인명경시 풍조까지 만든다는 것이다. 
교특법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주도로 만들어져 1981년 12월31일 제정, 이듬해 1월1일부터 시행됐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자동차산업과 보험산업을 키우기 위해 제정됐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당시 법무부·교통부·내무부(현 행정안전부)는 교특법 제정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제정 이유는 “자동차의 운전이 국민생활의 기본요소로 되는 현실에 부응해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정함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려는 것”이다. 입법 취지처럼 교틉법은 교통사고로 인한 전과자 양산을 막고 신속한 피해배상을 보장하는 긍정적 기능이 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운전자에게 유리한 탓에 ‘가해자 보호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교특법은 교통사고 가해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12대 중과실을 범하지 않은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해준다. 중과실을 범해도 교특법에서 말하는 피해자의 중상해 기준이 애매하고 후유장해 진단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처벌로 이어지기 힘든 실정. 설령 처벌이 이뤄져도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으로 ‘관대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해자 보호법’이란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교통사고 현장. 기사와 무관./사진=뉴시스

◆유전무죄·인명경시 풍조 키운 교특법 
이에 교특법을 두고 끊임없이 논란이 불거졌다. 단적인 예로 교특법이 헌법재판소에 3번이나 위헌제청된 것을 들 수 있다. 헌재는 2009년 2월 교통사고로 중상해를 입혔어도 종합보험에 가입된 경우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부분에 위헌결정을 내렸는데 그 전까지는 중상해를 입혀도 보험만 가입했다면 ‘장땡’이었던 셈이다. 

한편에서는 중상해 교통사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피해자가 원치 않을 시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 규정에 대해 합헌 판단을 내려 ‘유전무죄’ 풍조를 키웠다는 비판도 일었다. 돈이 있으면 ‘고액합의’를 통해 처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손해보험업계는 중상해 교통사고를 냈을 경우 형사합의금을 지원해주는 특약상품을 출시하며 이런 풍조에 일조했다. 


이와 관련 변호사 A씨는 “위헌 결정으로 바뀐 것은 합의금 액수와 보험료지 운전의식이 아니었다”며 “교통사고 합의가 활발해지는 효과가 잠깐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위헌결정 바로 전인 2008년 손보업계가 교통안전의식 저하와 인명경시 풍조를 이유로 들며 교특법 개정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손보협회는 중상해 교통사고를 냈을 경우 교특법 특례대상에서 제외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교통사고 현장. 기사와 무관./사진=뉴스1

◆가해자 보호하는 ‘악법’… 폐지 움직임도
따라서 교특법은 ‘가해자를 보호하는 세계 유일의 악법’으로 불리며 우리나라가 교통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데 한몫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교통사고는 110만8193건으로 사망자는 2만2952명, 부상자는 167만1157명에 달했다. 매일 607건의 사고가 일어나 12명이 죽어나가고 915명이 다친다는 뜻이다.

지난해에는 21만6335건이 발생해 4185명이 사망하고 32만2829명이 다쳤다.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는 1.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평균(1.1명)보다 1.7배 높아 최하위권으로 드러났다. 이는 노르웨이(0.3명)의 5.7배이며 옆나라 일본(0.5명)보다는 3.4배 정도 높은 수치다. 특히 보행자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심각한 상태로 최근 5년간 계속 40%대를 기록했으며 이는 OECD 평균의 3배 수준이다.

나아가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2008~2017년 1심에서 교특법이 적용된 사건을 보면 전체의 45.4%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벌금형이 34.1%, 금고형은 5.9%였다.

지난 2월 서울 서초구의 한 도로에서 불법좌회전 중 오토바이와 충돌한 뒤 재차 후진하다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트럭운전사 장모씨(50)도 금고 1년을 선고받았다. 장씨는 경찰조사에서 구호조치를 하려고 후진했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은 주변 CCTV 영상 등을 분석해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 장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장씨와 피해자 사이에 다툼이 없었고 피해자가 쓰러진 것을 보고 후진하기까지 3초밖에 걸리지 않아 살해 의도를 가지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라며 살인 혐의는 무죄로 판단, 교특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보고 금고 1년을 선고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여론은 들끓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겨우 금고 1년”이라며 솜방망이 처벌을 비난하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 7월 김해공항 진입도로서 40대 택시기사를 치어 중상을 입힌 BMW 차량./사진=뉴스1

교특법으로 인한 논란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치권도 팔을 걷어붙였다.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7월 "우리나라 교통사고 지표가 OECD 최하위 수준을 못 벗어나는 것은 교통사고 가해자의 편의를 봐주는 법체계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교특법 폐지 및 대체입법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지난 5일에는 교특법 폐지와 대체입법을 논의하는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교특법 개정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0월11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주 의원이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했거나 12대 중과실만 위반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면제해주는 교특법은 인명경시풍조를 반영한다"며 "교특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민 청장은 "교특법과 관련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제기된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교특법을 폐지하면 경찰의 업무량이 대폭 늘어나고 전과자가 양산된다는 이유로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이에 대해 변호사 A씨는 “반대로 생각하면 경찰이 담당해야 할 업무를 그동안 보험사 등 민간에 떠넘겼다고도 볼 수 있다”며 “블랙박스·CCTV로 과실을 판단하기 쉬워진 만큼 큰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대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