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왼쪽)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뉴시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박병대 전 대법관(61·사법연수원 12기)과 고영한 전 대법관(63·11기)의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이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하던 검찰 수사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일 오전 0시37분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시작된 지 14시간 만이다.

임 부장판사는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돼 있다"며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피의자의 주거 및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사유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의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했던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명 부장판사는 "본건 범행에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와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와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진 점" 등을 기각 사유로 제시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3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차례로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며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아오던 박·고 전 대법관을 상대로 ▲강제징용 민사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고처분 관련 행정소송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 의원 지위확인 소송 등의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조성 ▲일부 판사들의 비위 행위에 대해 징계를 내리지 않은 직무유기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사상 초유의 전직 대법관들의 구속영장 발부를 기각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하던 검찰 수사는 제동이 걸리게 됐다.


당장 검찰은 법원의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에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직근 상급자들인 박·고 전 법원행정처장 모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라고 반발했다.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검찰은 그간 진행했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보완 수사에 집중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현재 양 전 대법원장이 두 전직 대법관과 관련한 혐의사실 대부분을 보고받거나 지시한 '공범'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보고받는 것을 넘어 직접 사건에 개입한 정황도 확인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사건 재판과 관련해 전범기업 측 소송대리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한모 변호사와 여러 차례 접촉한 것은 물론 독대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한 변호사에 대한 소환조사는 물론 지난달 12일 한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또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에 대해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서도 지난달 확보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 문건들을 토대로 양 전 대법원장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 문건에는 법원행정처 차장-행정처장-대법원장 순으로 자필 서명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