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UN)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2018)에 따르면 한국은 5.875점으로 행복지수가 157개 국가 가운데 57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는 꼴찌에서 두 번째인 32위였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5.8명(2016년 기준)이었다. OECD 회원국 평균 11.6명보다 2.2배나 많은 1위다. 2009년 33.8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감소 추세지만 여전히 높다.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가 더 걱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19세 이상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가 현재 불행하며 과거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고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사업 실패나 파산 등을 당하면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55.9%에 달했다.
게다가 잇단 사건사고 소식에 국민들은 불안하다. 최근 강원도 강릉시 운산동에서 발생한 서울행 KTX산천 탈선사고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열차에는 198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저속운행 중이라 14명이 경상을 입은 것에 그쳤지만 정상속도로 달리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자살률 1위, 국민 옥죄는 고비용 구조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2위인 경제대국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올해 3만1243달러로 2006년 2만달러를 넘어선 지 12년 만에 ‘3만달러 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숫자로 보면 걱정이 없을 것 같은 한국의 사회생활 성적표가 민망하기 짝이 없다. 자살률이나 행복지수, 불안감 등으로만 본다면 ‘보릿고개’라는 절대빈곤에 시달렸던 1950~60년대보다도 낫다고 할 수 없어서다.
한국인의 삶을 이처럼 쪼그라들게 만든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살인적인 고비용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오로지 경제적 부와 소득으로만 줄 세우기 하는 획일화된 가치관이다.
우선 고비용 구조를 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는 18조6223억원으로 전년보다 2.8%(5000억원) 늘었다.
학생 1인당으로는 27만원으로 그다지 많지 않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통계에 잡힌 사교육비 총액을 전체 학생 수로 나눈 것이라 현실과 동떨어졌다. 대입 수능을 준비하는 고3과 재수생 등의 학원비는 1인당 월 2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내 집 마련 비용도 만만치 않다. 눈뜨면 오르는 아파트값에 쫒겨 너도나도 얻게 된 대출 규모가 엄청나다. 가계부채는 지난 9월말 기준 1514조4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1500조원을 넘어섰고 가구당 빚은 평균 7022만원이다.
빚 없는 가구를 감안할 경우 실제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 대출금리가 오르는 추세인데다 집값은 뒷걸음질치고 있어 대출받아 집 산 사람의 불안은 커진다.
자녀 학원비와 대출이자를 내면 남는 게 없다보니 앞날이 막막하다. 더욱이 본인이나 가족이 중병에 걸리면 가정경제가 붕괴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67.3%나 됐다. 삶에 불안을 느낄 정도로 사회시스템을 불신하고 있으며 10명 중 7명은 하위계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로지 ‘돈’, 획일화된 가치관
고비용 구조가 정착되다 보니 가치관도 돈으로 획일화됐다. 돈이 있어야 자녀 과외를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고 돈이 있어야 ‘부자 동네’에서 고급 아파트를 사고 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닐 수 있으며 돈이 있어야 해외여행도 가고 오페라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이와 같은 것을 할 수 없으니 돈 없이 사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고 행복하지 않으니 살맛을 잃어간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오로지 돈의 많고 없음이 잣대다. 비록 돈이 좀 모자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수없이 많을 텐데 주머니에 돈 떨어지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절망에 빠진다.
심화된 소득불평등도 불안을 부채질한다. 올 3분기(7~9월) 중 소득 하위 10%(1분위)의 월평균 소득은 85만7396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3%(10만8941원) 줄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반면 최고소득층(상위 10%)은 같은 기간 9.02%(97만6244원) 늘어난 1180만114원이다. 이는 최하층보다 1094만2718원(13.8배)이나 많은 수치. 취약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과는 반대 결과다.
◆‘할 수 없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자살률 1위와 행복지수가 뒤에서 2위라는 ‘적폐적 불명예’는 하루 빨리 벗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과제라고도 할 수 없다.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반드시 이루겠다는 실행력만 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주택값 안정과 사교육비 청산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건너는 것처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어른을 위해 나무를 꺾는 일을(가능한 일이지만 하기 싫어) 하지 않는 일”(‘맹자’의 양혜왕 상편 중)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이 행복하려면 외침 받을 위험이 없고 의식주행(衣食住行)에서 걱정이 없어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이 불행해 자살률이 OECD 1위인데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치 잘 하고 있다며 떠들어 대는 정치꾼은 엄격하게 심판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1호(2018년 12월19~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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