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가 일어난 지 오늘(12일)로 39년이 지났다.
12·12사태는 1979년 12월12일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끄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다.
그 시작은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해 군내 주요 지휘관을 교체하는 등의 개혁을 벌인 것에서 비롯됐다.
정 총장의 행보에 불만을 품은 전두환은 정 총장이 김재규와 사전공모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하자 독단적으로 신군부 세력을 이끌고 정 총장을 강제 연행했다.
정병주 사령관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등은 이에 대항했지만 최규하 대통령이 다음날 오전 5시쯤 정 총장 연행을 사후 승인함으로써 신군부에 체포됐다.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다음날 오전 6시20분까지 육군본부·국방부·중앙청·경복궁 등 핵심 거점을 차례로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 하에 뒀다.
야당과 대학생들은 거세게 저항했고 신군부는 이에 대항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결국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계기로 국가 권력을 탈취함으로써 쿠데타를 완수해냈다. 비상계엄 다음날 광주는 군부세력에 무참히 짓밟혔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김종필 전 총리는 보안사령부에 감금됐다.
신군부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이희성 중장을, 수도경비사령관에 노태우 소장을, 특전사령관에 정호용 소장 등을 앉히며 군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장악했다. 이후 전두환은 그해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해 반란을 마무리했다.
신군부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이희성 중장을, 수도경비사령관에 노태우 소장을, 특전사령관에 정호용 소장 등을 앉히며 군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장악했다. 이후 전두환은 그해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해 반란을 마무리했다.
12·12사태 진상은 그 후 십여년 간 밝혀지지 못한 채 권력에 의해 은폐됐다가 김영삼 정부 아래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이 구속되고 사법적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았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 쿠데타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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