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은 끊어진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가며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2018년)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27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합의해 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의 주요 내용이다. 판문점선언이 나온 지 40여일 뒤인 6월1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사상 처음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열고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고 미국과 북한은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한다”며 ‘판문점 선언’을 재차 확인했다.
◆빛바랜 ‘4·27 판문점 선언’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로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통일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남북 감시초소(GP)가 폭파되고 사상 처음으로 화살머리고지 부근에서 남북을 잇는 길이 열려 남북공동으로 6·25전쟁 때 산화한 분들의 유해발굴이 이뤄졌다.
남북 이산가족이 21번째로 상봉했고 중단된 금강산관광과 폐쇄된 개성공단이 조만간 다시 열릴 것이란 기대가 높아졌다. 도라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유럽까지 여행할 날도 머지 않아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가고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안에 서울을 방문한다는 남북공동성명도 발표됐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비건 특별대표가 평양으로, 김영철 북한 부위원장이 워싱턴으로 오가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2019년 2월27~28일)이 하노이에서 열림으로써 이런 희망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서로 원하는 것을 제시했을 뿐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둘러 워싱턴으로 날아가 3차 북미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리려고 노력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시큰둥했다.
이번에도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양상이다. 남·북·미 사이에 ‘북한 비핵화’를 해결하기 위한 물밑 접촉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급 인사는 판문점에서 열린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교훈
미국의 고급장교이던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쟁 때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무려 8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감금됐다가 풀려났다. 그와 함께 수감됐던 동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냉혹한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반드시 살아 나가겠다는 목표를 잃지 않은 ‘현실주의적 낙관주의’를 유지한 덕이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낭만적 낙관주의’와 ‘주관적 희망주의’에 젖은 포로들은 제풀에 꺾여 죽고 말았다. 포로들은 부활절에는 석방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수포로 돌아가면 추수감사절에는 틀림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에도 석방되지 않자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때는 감옥에서 나갈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풀려나지 않는 일이 되풀이되자 상심에 빠지게 됐다.
현실을 직시한 희망으로 목표를 이룬 것과 달리 객관적 근거 없이 잘 풀릴 것이라는 낙관주의에 빠져 일을 그르치는 것을 가리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가 풀려나온 빅터 프랭클도 절망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스톡데일과 프랭클은 냉탕과 온탕을 수없이 오고가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동안 남한은 북한을 외사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준비가 덜 돼 있고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우리가 진심을 다해 도와주고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바뀔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가진 셈이다.
‘옷을 벗기는 것은 북풍한설이 아니라 따듯한 햇살’이라는 믿음 아래 아낌없이 준 외사랑의 대가는 북한의 핵개발이었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한 상태에서도 외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모르는 짝사랑과 달리 상대방이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외사랑은 결혼에 이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 아프다.
◆'일본 극복' 사례에서 배워야
일본은 한국에 아주 불편한 이웃이다. 한국은 일본에 앞선 문명을 아낌없이 전해줬지만 일본은 침략과 역사왜곡을 되풀이하고 있다.
도리어 아직도 ‘독도는 일본령’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초중고 역사교과서에서 반복하는 적반하장의 만행을 자행한다. 한국이 후쿠시마 수산물을 금지한 것은 잘못이라고 1심 판결을 내린 세계무역기구(WTO)를 옹호하던 일본은 2심에서 뒤집혀 패소하자 그래도 한국이 수입해야 한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한국이 2심에서 승소한 것은 ‘일본에 유리한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인 상태에서 ‘일본의 허점을 노리고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한 덕분이었다. 스톡데일과 프랭클의 ‘현실주의적 낙관주의’가 ‘모두 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일’을 승리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관계를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낭만주의적 희망주의’에 바탕을 둔 외사랑이 아니라 스톡데일이 보여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은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라 피땀이 배어있는 몸과 마음의 실천이다. 난파선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도만 해서는 안되고 육지를 향해 끊임없이 노를 저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0호(2019년 4월30일~5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