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금융권이 주52시간 근무제를 전면 시행한다. 2004년 주 5일제를 도입한 지 15년 만에 근무시간이 대폭 줄어드는 것이다. 은행은 근무시간을 주52시간으로 줄이기 위해 PC오프제, 유연근무제, 회의절차 간소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줄어든 근무시간을 보완하기 위해 업무가 많은 부서에 추가 인원을 배치했다.
정부는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삶의 만족도가 오르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52시간 근무 적용이 어려운 특수직군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라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동욱 기자
◆주 52시간제, 확 달라지는 근무환경
“벌써 퇴근해?” 우리은행에서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금기어다. 우리은행은 Do & Don’t(두 앤 돈트)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직원들이 해야 할 것(Do)과 하지 말아야 할 것(Don’t)을 리스트로 만들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사내 문화를 바꿔보려는 취지에서다.
퇴근시간에 관련한 질문, 업무 시간 중 사적으로 메신저를 하거나 흡연을 하러 가는 것 등도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꼽혔다. 반대로 ‘정시퇴근’이나 ‘임원 등 상급자부터 솔선수범해 퇴근하기’ 등은 해야 할 리스트에 올랐다.
KEB하나은행은 ‘하나·하나·하나’ 캠페인에 돌입했다. 회의는 주 1회, 시간은 1시간 이내, 자료는 1일 전에 배포하자는 뜻이다. 보고는 사내 인트라망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하되 보고자료는 한페이지 이내로 줄인다. 회의 효율성을 위해 알람시계도 회의실에 배치했다.
신한은행도 알람시계를 부서에 배분했다. 5분, 15분, 30분 등 원하는 시간만큼 알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계다. 짧은 회의는 서서하고 임원회의는 사전에 안건을 안내해 회의 효율성을 높인다.
KB국민은행도 스탠딩회의를 하고 있다. 태블릿PC로 회의내용을 확인해 자료를 출력하는 등 회의준비 시간도 줄였다. 시간을 많이 쓰는 파워포인트 보고서를 전면 금지하고 키워드 중심으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NH농협은행은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경영위원회를 오전 9시로 미뤄 정규 근로시간 내에 회의를 소화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가급적이면 퇴근시간에 임박해 업무를 지시하지 않고 회의를 짧게 하는 등 일하는 문화가 달라졌다”며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를 활용해 사람의 공백을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만 열외… 형평성 논란
금융권은 주52시간제 도입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지난 1년간 유예기간을 가졌다. 급하게 근무시간을 줄이면 소비자가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은행권은 주52시간제를 준비했기 때문에 혼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특수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반쪽짜리 근무단축’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나라와 근무시간이 다른 외환 등 해외금융을 담당하는 직원이 대표적이다.
분기별로 각종 재무제표를 공시해야 할 때나 기업에 대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전산(IT), 투자금융(IB), 회계직원들도 52시간 적용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정보통신기술(ICT)기업과 협업하는 금융상품 개발부서도 물리적인 시간을 줄이기 어려운 업종이다.
일각에선 금융회사 근로자를 재량근무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재량근무제는 업무에 따라 근로자 재량으로 근로시간을 배분하는 제도다.
현재 재량근무자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31조에 따라 연구분야나 정보처리 시스템 설계 및 분석업무, 신문·방송·출판 업종의 기사취재·편집업무, 디자인, 방송 프로듀서 등이 해당한다.
짧은 기간에 많은 기업을 회계감사하는 회계법인들도 올 초 재량근로제를 도입했다. 노사가 합의한 근무시간에 따라 임금을 더 주는 방식이다. 결국 주 52시간제 예외대상이 되는 셈이다.
금융권에선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가 재량근무 대상에 올랐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고시를 고쳐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를 재량근무제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을 살피고 분석해야 하므로 근무시간을 제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본에서도 ‘유가증권시장 시세, 동향 또는 유가증권의 가치를 분석하고 평가, 투자, 조언하는 업무’를 재량근무 대상에 포함시켰다.
성과에 따라 연봉을 가져가는 직원들은 재량근무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본급 비중이 큰 직원들은 연장근무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해 반발이 거세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근로자들은 초과근로시간 감소에 따라 월 임금이 평균 37만7000원 감소한다. 300인 이상 기업 근로자는 7.9%, 299인 이하 기업 근로자는 12%쯤 급여가 줄어들 전망이다.
재량근무제를 적용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법으로 근무환경을 줄이지 않으면 만성적인 초과근무 관행이 정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2016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300시간이 많다. 주52시간씩 52주 근무하면 2700시간이 넘는다.
은행처럼 노조가 구축되지 않거나 사측과 협의가 어려운 소형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도 재량 근로제 도입에 난색을 표한다. 사용자(사측)와 임금단체협약에서 재량근로제를 논의해야 하는 등 사실상 절차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절대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주52시간제 도입에 부작용을 줄일 수 있도록 금융회사별로 탄력적 근로시간 허용 확대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9호(2019년 7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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