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휴게소 가라사대-중] 이색 휴게소 가보니
추석연휴가 낀 9월은 전국 고속도로가 가장 붐비는 시기 중 하나다. 고속도로 통행량은 봄 행락철부터 꾸준히 증가해 8월 휴가철과 추석을 전후로 절정을 찍은 후 11월 이후부터 서서히 감소한다.
올 7월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8년 총 16억506만6000대가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하루 평균 439만7000대 꼴로 가장 교통량이 많았던 9월에는 총 1억3824만6000대가 고속도로를 주행했다.
고속도로에서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휴게소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첫 등장한 휴게소는 현재까지 총 220여개로 늘어났다. 최근까지도 대다수 휴게소는 음식값이 비싸고 특색이 없어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휴식·여행 거점의 기능을 강화하고 나섰다.
2019년 한국의 휴게소는 어떤 모습일까. 국내 최초의 휴게소인 추풍령휴게소부터 지난해 문을 연 군위영천·삼국유사 군위휴게소, 한차례 영업중단 후 재개장한 금강휴게소까지 전국의 휴게소를 직접 찾아 휴게소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콘셉트 ‘확실’ 특색은 ‘글쎄’
기자가 휴게소 투어 일정을 세우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지난해 개통한 상주영천고속도로의 휴게소 중 하나인 군위영천휴게소와 삼국유사군위휴게소다. 군위영천휴게소는 서울 종로구청에서 269㎞ 떨어져 있어 4시간4분이 소요된다.
경북 군위군과 영천군 사이에 위치한 군위영천휴게소는 지난해 개장해 최신식 시설을 갖췄다. 인테리어도 공장콘셉트로 구성돼 눈길을 끌기 충분하다. ‘제1공장’, ‘제2공장’으로 구분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푸드코트가 눈에 들어온다. 각종 전구와 파이프, 녹슨 도구 등 공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식이 실내를 가득 채웠고 드럼통과 석재, 골재가 벽면을 메웠다.
다만 확실한 콘셉트의 인테리어와 달리 메뉴는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휴게소 음식 메뉴는 비빔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우동 등 통상 휴게소 음식과 큰 차이가 없었다. 외부에는 소시지, 핫도그, 어묵 등을 판매하는 가판이 줄지어 있었는데 특색있는 음식을 찾기 어려웠다.
기수를 돌려 상행선 상주방향에 위치한 삼국유사군위휴게소를 들렀다. 상주방향의 이 휴게소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삼국유사라는 이름은 일연대사가 군위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데서 유래됐다. 경북 군위군 상주영천고속도로 상행선에 위치한 삼국유사군위휴게소의 외관은 군위영천휴게소와 차이가 거의 없었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7080시대를 재현해 ‘삼국유사’라는 단어가 생뚱맞게 느껴졌다. 영어대신 한글을 사용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으나 삼국유사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매점·커피숍’이라는 간판아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본역’으로 향하는 커다란 581호 전차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휴게소에서 만난 직원 A씨는 “화본역은 군위군에 위치한 간이역으로 각종 언론에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종종 소개된다”고 설명했다.
화본역으로 향하는 전차 안에는 각종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 두개와 좌석이 배치돼 있었는데 손잡이를 옛 시절 그대로 재현한 것이 눈에 띄었다. 휴게소 내 음식점 간판도 ‘라면배급소’, ‘장미다방’, ‘경양식’ 같이 다소 촌스럽게 디자인 됐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교련복이나 교복을 입고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과거로 온 것 같다는 상상을 해봤다. 단 휴게소 인근에 축사가 위치한 탓인지 시각을 넘어 후각을 자극하는 옛 정취를 덤으로 느꼈다.
◆발길 끊긴 최고령 ‘추풍령 휴게소’
삼국유사군위휴게소 다음 행선지로 우리나라 최초의 휴게소인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를 찾았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과 하행선 중간지점에 위치한 이 휴게소는 1971년 1월 문을 연 뒤 올해로 48년째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최초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각종 기념탑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독특한 점은 상행선 휴게소와 하행선 휴게소를 고속도로 위로 놓인 육교를 통해 오갈 수 있다는 점이다.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간다”는 노래가사처럼 추풍령휴게소는 경부고속도로 구간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휴게소다. 한때 동물원을 갖추고 있어 인근 휴게소의 부러움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매출을 기록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이용하면서 VIP공간도 갖췄던 추풍령휴게소지만 세월의 흔적을 피하지는 못했다. 추풍령휴게소의 동물원은 휴게소 운영권이 민간으로 이전되면서 현재는 폐쇄됐다.
추풍령휴게소의 낡은 건물과 부족한 편의시설은 직전에 방문한 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뚜렷하게 대비됐다. 위태롭게 방치된 건물 외관은 물론 처마 밑의 말벌 집은 오가는 행인을 종종 위협했다. 휴게소의 특색 중 하나였던 등산로는 현재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을 통제해 오가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 이에 휴게소 측은 최근 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 등 휴게소 환경개선 및 이용문화 혁신을 추진 중이며 건물 뒤편 7만여평의 부지를 활용해 휴양시설을 설립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휴게소를 찾은 화물차운전자 B씨는 “예전에는 동물원도 있어 방문객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며 “최근에는 우회도로가 많이 개통돼 이곳을 찾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 하지만 화물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휴게소가 한적해서 마음에 든다. 애용하는 휴게소 중 한곳”이라고 말했다.
◆강변에 위치한 위기의 ‘금강휴게소’
충북 옥천군에 위치한 ‘금강휴게소’를 찾았다. 충청도 지역을 관통하는 금강변에 위치한 금강휴게소는 상행선과 하행선을 한곳에 수용하는 양방향 휴게소의 원조다.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를 출발해 서울방향으로 35㎞를 달리면 금강휴게소로 향하는 진입로를 만날 수 있다. 서울 만남의광장휴게소를 기준으로 본다면 166㎞ 떨어져있으며 약 2시간이 걸린다.
금강휴게소는 1971년 7월 문을 연 곳이지만 2002년 영업중단 후 2003년 재개장하는 등 굴곡있는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이 휴게소에서는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음식도 판매한다. 바로 ‘도리뱅뱅이’다. 피라미를 납작한 팬에 동그랗게 두르고 튀긴 후 고추장 양념을 더한 이 음식은 충북 옥천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금강휴게소의 가장 큰 특징은 금강유원지에 인접해 있어 한적한 강변을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서 낚시를 즐길 수 있고 시원한 수상레포츠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저녁 6시에 하나둘 문을 여는 강변 포장마차는 운치를 더해준다. 때문에 주말 해질녘이면 금강휴게소는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휴게소에서 금강이 보이는 곳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안전망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계단 몇개를 내려가면 강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네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최근에는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옥천~영동구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휴게소 직원 C씨는 “잘 나갈 때는 한해 100억원 넘게 번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절반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에는 다른 휴게소에서 볼 수 없는 경치를 무기삼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