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험업계에서는 보험사와 법인보험대리점(GA) 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더 좋은 수수료 혜택을 제공해 영업조직의 핵심인 설계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는 것.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GA는 보험업계의 이단아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심지어 업계 ‘힘의 추’가 GA로 넘어간 분위기다. 이는 지난달 말 업계 1위 삼성화재가 GA 불매운동에 도입하려 한 수수료 개편안을 부분 철회한 것과 무관치 않다.
/사진=뉴시스 김선웅 기자
◆안중에도 없던 GA, ‘업계 1위’ 위협
손해보험업계 1위 삼성화재는 9월부터 도입하려했던 설계사 수수료 개편안을 일부 철회했다. GA업계가 삼성화재의 수수료 개편안에 반발하며 상품 불매를 선언한 것에 따른 조치다.
당초 삼성화재는 신인 설계사와 타 손보사나 GA에서 이동한 경력 설계사를 대상으로 수수료를 월납보험료의 최대 1200%까지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하려 했다. 삼성화재는 수수료 변경을 통해 신인 설계사가 ‘실적형’과 ‘고정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적형은 실적에 비례해 최대 1200%의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계약 익월 선지급 수수료는 725%로 정했다. 고정형은 위촉 후 3개월 동안 최소 200만~최고 300만원의 고정급이 주어지고 이후에는 실적형과 마찬가지로 비례 수당을 받는다. 영업 초기의 적응기간을 고려했다.
GA업계가 반발한 지점은 실적형이다. 삼성화재가 도입하려 한 실적형은 별다른 실적조건 없이 첫달에 725%를 지급받는다. 이는 현재 GA업계가 설계사에게 실시하는 수수료 지급형태와 유사하다. 즉, GA만의 수수료 메리트가 사라지는 셈이다. 또한 삼성화재의 수수료 개편안은 GA에서 이동한 경력 설계사도 신인 설계사로 간주했다. 사실상 삼성화재가 GA에서 설계사를 빼오려는 전략이라고 GA업계는 해석한 것이다. 이에 삼성화재 측은 “새 수수료 개편안은 신인 설계사들의 초기 수당을 보장해 이들이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며 “GA설계사를 빼오려고 도입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업계 1위 보험사가 파격 개편안을 들고 나오니 GA업체들은 설계사가 이탈할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며 “삼성화재 상품 불매를 선언할 만큼 이 ‘실적형’ 도입을 막으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화재는 일단 한발 물러서는 방법을 택했다. 실적형 도입을 철회하고 고정형만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GA측에 불매운동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수년전만해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GA에게 업계 리딩 보험사가 꼬리를 내린 셈이다. 삼성화재 역시 GA업계와 척을 져 이득을 볼 것이 없다는 계산을 내렸다.
GA의 성장세는 가히 눈이 부실 정도다. GA는 모든 보험사의 상품을 취급할 수 있는 장점, 파격적인 설계사 수수료 지급 등을 무기로 단기간에 몸집을 크게 불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78개 중·대형 GA의 소속 설계사 수는 18만746명으로 보험사 소속 설계사 수 17만8358명을 넘어섰다. GA의 규모도 커졌다. 일반적으로 100명~499명의 소속 설계사를 보유한 경우 중형 GA로, 500명 이상의 소속 설계사 수를 보유한 경우 대형 GA로 불린다.
업계에 따르면 설계사 500인 이상 대형 GA는 50~60개에 달한다. 설계사 1만명 이상의 초대형 GA도 3개나 등장했다. 국내 생/손보사 중 1만명 이상의 전속설계사를 보유한 회사는 6~7곳에 불과하다. 심지어 업계 상위 GA업체는 배우 하정우, 현빈 등을 광고모델로 쓰며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반 보험사와 다름없는 입지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실적 부진에 빠진 보험사 입장에서는 GA에 ‘우리 상품을 더 팔아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업계에서도 삼성화재의 이번 수수료 개편 부분 철회를 이해하는 눈치다. 삼성화재는 GA측과 협의해 수수료 개편안 실적형 철회, GA설계사 리쿠르트 금지 등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과 '을' 뒤바뀌나
GA의 상품 불매운동 대상에는 삼성화재와 함께 메리츠화재도 지목됐다. GA업계는 삼성화재보다 먼저 설계사 수수료를 높인 메리츠화재로까지 불매 폭을 넓히려 한다. 삼성화재와 장기인보험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메리츠화재 입장에서 GA의 불매운동은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메리츠화재가 지난해 GA를 통해 거둔 장기인보험 원수보험료는 전체의 약 60%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메리츠화재 측은 다소 억울하다는 눈치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삼성화재가 GA의 불매운동 대상이 되면 메리츠화재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얘기가 나와 저희도 불매 대상에 포함된 것”이라며 “GA측이 저희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부분도 크게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지난 9일 GA경영자협의회 대표단은 회의를 열어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 상품 불매운동을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GA측의 불매운동 선언으로 ‘갑과 을’이 바뀌었다는 분위기다. 장기적으로 보험사들이 자체 설계사 수수료 개편안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GA업계 한 관계자는 “당국이 GA에 불리한 수수료 개편안을 2021년부터 도입하려 하자 GA측의 예민함이 극에 달한 분위기”라며 “대·중형 GA를 중심으로 보험사와의 협상에서 우선권을 쥐어야 한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GA 눈치를 보며 설계사를 운용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0호(2019년 9월17~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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